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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왜 부분복원 인가?

'헌집 허물어 새집 짓는' 전면 재건축식 복원의 한계를 넘어

[취재파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왜 부분복원 인가?
문화재를 보러 갔다가 옛 유적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기는 커녕 신축 건물을 보는 듯한 생경함에 실망했던 경험, 한 번 쯤 있을 겁니다. 문화재 복원 방식 탓입니다.

유적을 전면적으로 해체한 뒤 새로운 자재와 시공법으로 단시일내에 공사를 끝내다 보니 세월을 이겨낸 원본 문화재의 감흥은 사라지고 새 아파트를 보는 듯한 낮설고 어색함이 남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우리 문화재 복원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중 서탑의 복원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16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현장에서 언론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국보 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복원사업이 시작된 뒤 기초조사와 해체작업을 거친 뒤 이달부터 본격적인 재조립 작업에 들어갑니다.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은 창건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복원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원형을 복원할 고증 기록이 없습니다. 이 탑이 몇층이었는지, 어떤 공법이 쓰였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대신 2002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직전에 남아있던 규모대로 6층 높이에서 복원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특히 탑의 한쪽 몸체가 허물어져 있는데, 이 허물어진 형상을 되살려 복원하지 않고 수리 보수만 할 예정입니다. 대신 복원팀은 현장에서 발굴된 원래 석재의 재활용률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깨져나간 석재를 재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석재와 접합시키는 기술이 개발돼 특허 등록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발굴된 석재의 70%를 재사용할 예정이라고 복원팀은 밝혔습니다. 
미륵사지 서탑 복원 이후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미륵사지내에 있는 또 하나의 석탑인 동탑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원래 미륵사지에는  동탑과 서탑, 두 개의 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중 동탑은 과거 불상의 시기에 완전히 무너져 내려 탑지만 남은 상황이었던 것을 4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93년 복원을 마쳤습니다. 당시 탑의 형상을 확인할 고증 기록이 전무하다보니 바로 옆에 서있는 서탑의 형상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탑과 동탑이 같은 형상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경주 불국사 앞마당에 나란히 서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사례를 보면 각각 남성미와 여성미를 상징한다고 일컬을 만큼 전혀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동탑 복원시 사용한 석재와 공법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발굴된 석재는 극히 일부만 재사용하고 거의 모든 석재를 새로 구해 쓴 겁니다. 게다가 기계로 석재를 가공해서 탑을 쌓다보니 고대 유적의 고색창연한 미감은 찾을 수 없이 급조한 모조품 느낌이 강합니다.

본래 노태우 대통령이 대선 당시 호남 표심을 노리고 공약 사업으로 추진하다 보니 졸속으로 복원이 추진된 탓입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동탑에 대해 "최악의 복원 사례"라며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사진 미륵사지 동탑)

추정만으로 이뤄지는 문화재 복원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해외 사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바티칸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로마시대 때의 조각상 <라오콘 군상>이 그렇습니다. 1506년 로마의 한 농부가 포도밭에서 라오콘을 발견했을 때 조각상의 오른팔이 유실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펴진 팔의 형상을 갖다붙여 복원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300년이 지난 1905년 로마의 한 석공장에서 유실된 팔이 발견됐는데 전혀 다른 형상(구부러진 모습)이었습니다. 

미륵사지 동탑 복원에서도 이같은 추정 복원으로 인한 오류가 드러났습니다. 동탑을 복원하면서 서탑을 모델로 삼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서탑의 경우 탑의 중심축이 4도 정도 기울어지는 바람에 탑신의 입면 역시 한쪽으로 기우뚱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동탑 복원팀은 당시 이같은 사실로 알지 못한 채 기우뚱한 각도를 원형으로 착각해 동탑의 탑신을 복원한 것입니다.
미륵사지 서탑의 복원은 2017년 7월에 끝날 예정입니다. 복원된 서탑이 모습을 드러내면 미륵사지 앞마당엔 동탑과 서탑,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재 복원의 두 사례가 나란히 대비될 겁니다.

크고 화려한 건축물에 익숙한 분들에겐 새로 복원되는 서탑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고대 문화재로서의 미감은 물론 역사성 마저 잃어버린 동탑이 우리 문화재 복원의 모범사례가 될 수는 결코 없을 겁니다.

고증기록이 부족할 경우 무리한 원형 복원보다는 현상 보존에 초점을 두고 역사성과 진정성을 살리는 문화재 복원의 새 흐름이 자리잡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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