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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③…김정일 4주기 앞둔 공연 무리수?

[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③…김정일 4주기 앞둔 공연 무리수?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5.12.17 14:14 수정 2015.12.18 10: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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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 해프닝의 여운이 여전한 가운데 오늘 김정일 사망 4주기를 맞았습니다. SBS를 포함해 베이징 주재 외신들은 아침부터 조양구 외교단지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앞에 모여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3주기 탈상 때는 중국 지도부 내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이 북한대사관을 직접 찾아 조문했던 만큼 올해 중국 측의 조문 움직임 역시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3주기 때 조문을 했던 바로 그 류윈산이 지난 10월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방북해 김정은과 만남을 가지며 한껏 고조됐던 북중간 해빙 무드는 바로 며칠 전 모란봉악단의 전격적인 공연 취소로 냉기류로 전환되는 듯한 분위깁니다.

그런데, 약속된 공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돌연 귀국길에 오른 모란봉악단과 김정일 4주기가 오버랩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불거져 나옵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국가대극원 첫 회 공연이 예정된 지난 12일 북한은 전국에 김정일 사망 4주기를 맞아 애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노래와 춤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달 초부터 1면에 연일 김정일 관련 글을 올리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애도기간 선포 다음 날인 13일 2면 전체를 김정일 사진 11장으로 도배했습니다.

거국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 엄격한 가무 금지령을 내린 마당에 국경 넘어 베이징 한복판에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친솔 악단이라는 모란봉악단원들이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현란한 율동으로 수 십 곡의 레퍼토리를 불러 제끼도록 놔둔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레퍼토리가 김씨 3대 찬양 일색에 혁명 가요들이라 하더라도 뭔가 개운치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저간의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북중 간에 사전 조율을 끝내고 공연 일정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종종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북한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시나리오 하나가 그려집니다.

36년 만에 열리는 내년 5월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최고 지도부의 방북을 추진하던 북한 내부의 한 참모 세력이 사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비밀리에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을 계획합니다. 아이디어를 들은 김정은이 앞뒤 재지 않고 흔쾌히 허락하자 공연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 속에 베이징에 입성한 모란봉악단에게 중국 측은 흥행에 따른 공연수익 배분을 미끼로 당초 예정됐던 12일, 13일, 14일 3차례 공연에 더해 이틀에서 사흘 간, 즉 길게는 김정일 4주기인 17일까지 연장 공연을 요구합니다. 물론 북한 측이 흡족해 할 만한 고위급 영도자의 참석도 제시됐을 겁니다. 연장 공연에 관해서는 중국 언론들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을 이끌고 온 최휘 노동당 제1부부장은 아마 평양에 이 같은 상황을 보고하고 추인을 요청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때 공연을 추진했던 참모 세력과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참모 세력이 반발했을 수 있습니다. 김정일 4주기인 17일까지 모란봉악단이 노래와 춤판을 벌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을 겁니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김정은이 후자의 손을 들어주며 모란봉악단에게 급거 철수 명령이 떨어졌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게는 황당한 통보였겠지만 '김정일 4주기 애도'라는 불가피한 명분이 있는 만큼 결국 중국 측도 마지못해 수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재룡 대사가 중국 측에 사과를 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이 경우 최고 존엄에게는 어떠한 결함도 없어야 하는 체제의 특성상 모든 책임은 김정일 4주기를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공연을 추진한 최휘 부부장 등 당 선전부문과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등에게 돌아갔을 겁니다. 해당 인사들의 향후 거취를 주시하면 이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판단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 측이 공연 무산에 대해 언론에 함구령을 내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비난 톤의 기사를 차단하고 외교부 대변인이 양국 간에 문화교류가 계속될 것이라며 사태 무마에 나선 것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모란봉악단만일 공연이 정말 김정일 4주기 애도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면, 그리고 북측이 충분히 중국 측에 사과와 유감의 뜻을 밝혔고 중국 측이 이를 수용했다면, 김정일 추모 기간이 끝나고 다음 달 김정은의 생일 같은 주요 행사가 끝난 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은 조만간 재추진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가 북중 관계에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북중 간 해빙무드를 이어가 궁극적으로 김정은의 방중이라는 초대형 이벤트의 성사도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여리박빙(如履薄氷)' 살얼음을 밟듯 조심조심 이뤄지는 북중 관계에 있어 이벤트 하나, 발언 한 마디 보다 관통하는 큰 흐름 파악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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