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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가정 양립' 지원한다더니…아이돌봄서비스' 축소 논란

[취재파일] '일·가정 양립' 지원한다더니…아이돌봄서비스' 축소 논란
"아… 정말 머리 아파 죽겠어요"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던 지인이 "아이는 잘 크고 있냐"라는 질문을 하자, 갑자기 목소리가 커진다. 아직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부모 속을 썩일 리는 없고,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아이 맡길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 지인은 아이를 낳은 지 4달 만에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양가 부모님은 멀리 사시고, 사설 돌보미 서비스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4달째 이용하고 있었다. 돌보미 선생님은 아이를 예뻐해 주셨고, 아이도 선생님을 잘 따르고 정이 많이 들었다.

이 지인은 '아이돌봄서비스' 기준상 '라형'으로 그동안 매달 정부로부터 42만 원을 지원받아 한 달에 78만 원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그런데 지난 7일 갑작스러운 문자를 받았다. '아이돌봄 서비스 종일제 라형은 내년부터 정부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내년부터는 서비스 비용 130만 원을 전액 직접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내년까지는 이제 고작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당장 가계에 부담이 가겠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일단 2달 동안은 기존 돌보미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며 생각을 해보기로 했단다.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아이돌봄서비스'는 그동안 맞벌이 부부에게는 한 줄기 빛이었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아이 돌보미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생후 24개월, 만 1세 이하의 영아를 월 200시간 이내로 종일 돌봐주는 서비스이다.

만 12살 이하 어린이에게 급할 때 아이 돌보미를 제공하는 시간제 서비스도 포함된다. 그동안 소득수준에 따라, 가, 나, 다, 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차등 지원을 해왔다.

올해까지는 전국 가구 평균 소득이 기준이었지만, 내년부터는 중위소득을 적용하게 된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가형은 중위소득 60% 이하, 나형은 60~85% 이하, 다형은 85~120% 이하, 라형은 120% 초과로 분류된다. 
그런데 영아 돌봄서비스의 경우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라형에 대해 내년부터 정부 지원이 완전히 끊기게 된다. 서비스 비용 130만 원을 온전히 부모가 부담해야만 한다.

나형과 다형의 경우도 본인부담금이 최대 30만 원까지 늘어난다.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가형만 본인부담금에 변화가 없다. 취약 계층을 제외한 모든 서비스 이용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다. 

시간제 서비스의 지원도 줄어든다. 특히 취학 아동의 경우에는 가형을 포함해 모든 소득 구간의 정부 지원 비율이 줄어든다. 

아이돌봄서비스 예산이 줄어서인가 싶어서 예산 내역을 봤더니 그렇지도 않다. 내년도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828억 1,600만 원으로 올해보다 41억 원이나 늘어났다.

아이돌보미 시급이 현행 6,000원에서 내년도 6,500원으로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서 아이돌보미에 종사하는 인력은 1만7,000여 명이다.

또한, 정부는 육아 대안이 별로 없는 미취학 아동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올해까지는 지원을 받는 미취학 아동 가구는 36,800만이었는데, 내년부터는 41,200가구로 늘어난다. 

정부는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줄이는 대신, 만 1살 이하 영아가 있는 가정에 20만 원을 지원해줄 예정이다. 갑자기 가계에 부담될 수 있기에 조금이나마 맞벌이 가구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변경 내용을 설명해주던 여성가족부 담당 과장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소득이 굉장히 높은데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이 많아요."

"돈도 많이 버니까 전액 부담도 할 수 있는 아니냐", "사설 서비스를 대신 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라형 가구의 경우 중위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527만 원 이상을 버는 가구이다. 나름 '먹고 살 만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 축소로 한 달에 60만 원을 더 부담하게 된 당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월급쟁이로서 한 달에 60만 원은 큰돈이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마음고생 하고, 아이는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될 바에는 "차라리 일을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 4월 출산을 하고 1년 휴직을 한 뒤 내년에 복직하려고 했던 한 아기 엄마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가 축소됐다는 소식에 회사로 돌아가는 걸 포기했다고 한다. 경력단절이 우려되지만,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맡기려고 해도 좀 '괜찮다'는 어린이집은 포화 상태여서 대기를 해야만 한다. 게다가 1살이면 어린이집에 가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걱정도 된다.

또, 어린이집에 맡기더라도 퇴원 시간이 오후 4~6시이기 때문에 업무가 조금이라도 길어질 경우, 아이가 갈 데가 없어진다. 사설 도우미의 경우에는 일단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최소 150만 원인 데다가, 그런 데도 없어서 못 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최악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가끔 들려오는 '아동 학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아이는 뭐 그냥 크는 줄 아느냐", "부모가 그 정도 할 각오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정부의 지원은 취약 계층에게 돌아가는 게 맞는 거라고 쳐도, 서비스 변경 3주 전에 문자메시지로만 통보하는 건 너무 하다.

어린이집 대기도 몇 달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하고, 아이와 맞는 돌보미를 구하는 것도 하루 이틀 안에 성사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준비할 시간은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달 초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공공·직장어린이집도 확충하겠다고 한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이다.

하지만, 당장 육아 부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대책은 어디에 있는가. 일과 육아 사이에서 치이고 있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래서 아이 더 낳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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