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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① - '단숨에!' 그녀들은 돌아갔다

[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① - '단숨에!' 그녀들은 돌아갔다
전격적인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취소와 귀국 해프닝은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가장 뜨거운 뉴스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선전무기로 불리는 미녀악단에 쏠린 원초적인 호기심에 더해 외교 에티켓이나 상식을 무참히 깨어버린 모란봉악단 돌발적인 공연 취소의 이유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 공연을 추진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중롄부)나 외교부 등 당국은 물론 관영 언론들 조차 상부의 함구령에 따라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코 앞에 두고 터져 나온 김정은 위원장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에 중국 측이 항의표시를 하며 일이 틀어졌다는 관측부터 기존 한국 언론보도를 방패삼아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과 김정은의 스캔들을 여과 없이 보도한 중국 비관영 매체들의 행태에 김정은이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무수한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모란봉악단의 2박3일간의 짧은 베이징 체류 기간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인터뷰하며 취재했던 기자로서 그 중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 가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모란봉악단의 대표곡인 "단숨에!"부터 소개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어린 나이에 집권한 김정은은 공포 정치를 통해 군부를 틀어잡고 빠르게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음악계에 호전적인 노래를 주문했습니다. 이 요구에 부응해 선풍적인 인기를 쓸며 떠로은 노래가 바로 "단숨에!"라는 군가입니다. 2012년 김정은은 아버지가 만든 은하수 악단을 대신해 친솔 악단인 모란봉악단을 출범시킵니다. 모란봉악단은 곧바로 '단숨에'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편곡하고 여기에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 악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삼았습니다.

자~ 함께 모란봉악단의 "단숨에!" 공연 동영상을 보시죠! ▶ 영상 보러가기

검은색 스커트 차림의 모란봉악단 현악 4중주팀이 연주곡버전으로 '단숨에'를 연주합니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미모의 전자바이올리니스트가 북한판 바네사 메이로 불리는 모란봉악단의 리더 선우 향희입니다.

절도 있는 "단숨에! 단숨에!" 구호에 맞춰 곡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보냅니다. 이때 무대 뒤 화면에 흐르는 뮤직비디오 화면엔 북한이 자랑하는 장거리로켓 은하3호 발사 장면이 나옵니다.(은하3호는 북한이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를 탑재하여 발사한 장거리 로켓으로 주행거리는 1만3천km에 달합니다.) "당 중앙은 위성 발사를 승인한다"라고 적힌 김정은의 친필 명령서도 보입니다.

흥이 오른 관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객석은 순식간에 댄스 파티장으로 변합니다. 화면 가득 미국 지도가 나타나고 평화적 인공위성이라던 은하3호는 미국 대륙을 향해 돌진합니다. 뒤이어 김정은의 위성 발사 관제소 현지 지도 장면이 이어집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이 보유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 언제든 미국을 포함한 적대세력을 "단숨에!"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호전적 군가를 모란봉악단이 선동가요로 바꿔 부르는 겁니다.

공연장 화면에 띄우는 뮤직비디오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합니다. 은하3호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지구를 폭파시키는 '하드 코어'부터 식품공장이나 양식장 같은 민생개선 선전화면으로 편집한 마일드 버전까지 공연의 성격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는 방식입니다. 차신들의 첫 해외공연인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에 모란봉악단은 "단숨에!"를 레퍼토리로 포함시켰을까요? 그렇다면 화면에 재생할 뮤직비디오는 어떤 버전이었을까요?

자 이번엔 모란봉악단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던 베이징으로 가보겠습니다. 공연을 이틀 앞둔 12월 10일 오전 야간기차편으로 베이징역에 도착한 모란봉악단은 버스로 약 15분 거리인 장안대로 연변의 민족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휴식 뒤 공연단 일부는 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공연장인 국가대극원에 들러 사운드체크 및 악기 점검 같은 리허설 점검을 마쳤습니다.
다음날 11일 오전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초청측인 중국 중렌부 관계자들의 인솔에 따라 베이징 해양 박물관에 들러 돌고래 쇼 등 공연을 관람하고 11시 반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한국, 일본 등 취재진이 몰린 것을 보고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점심 식사를 방안에서 해결하고 중롄부 요원들의 경호 속에 오후 2시반쯤 국가대극원 남문을 통해 공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단원들의 손엔 자신의 악기 케이스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연 준비는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참관표를 사고 공연장 밖에 먼저 들어가 있던 일부 취재진이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리허설 연주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중롄부 관계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로이터TV 등 외신을 통해 일부 리허설 장면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때 단원들의 차림이 군복인 점을 고려하면 무대의상을 차려입고 공연내용 그대로 연습해 보는 드레스리허설은 그 이후에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롄부 관계자들이 러허설 전 과정을 지켜보며 모니터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모란봉악단이 하드코어 버전의 "단숨에!"를 연주했다면 중국 측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상부 보고를 통해 공연 불가 방침을 전달 받은 중롄부 측이 모란봉악단에 공연 내용 수정을 요구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양측 간에 갈등이 불거졌을 건 뻔합니다. 국제사회 책임대국임을 내세우며 줄곧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견지해 온 중국 정부 입장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임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을 행해 호전적인 위협을 가하는 내용의 공연을 베이징 한복판에서 버젓이 진행되게 놔둘 수는 없었을 겁니다.

미국 대륙을 북한 핵미사일이 타격하는 장면을 중국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이나 정치국원이 지켜보는 장면이 외신을 통해 보도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과 항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내용을 삭제 하지 않으면 공연 자체도 불가하며 당초 약속됐던 중국 지도부의 참석도 없을 것임을 북측에 통보했을 것이고 공연 당일 오전까지 양측간에 양보 없는 기싸움 끝에 김정은이 돌연 귀국을 지시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모란봉악단의 돌연 공연 취소와 관련해 중국 측이 내놓은 유일한 권위 있는 반응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라는 신화통신의 짧은 기사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한 채 내놓은 소통의 문제란 해석이 바로 공연내용에 관한 양측 간의 서로 다른 기대의 충돌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지난 10월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모처럼 해빙 무드를 맞은 북중 관계이나 만큼 서로간에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을 겁니다.

중국측은 자신들의 체면을 고려해서 모란봉악단이 민감한 핵 관련 내용이나 지나친 김정은 우상화 내용을 배제한 공연을 준비해오리라 기대했을 것이고, 반대로 북측은 모처럼 최고지도자의 친솔 악단을 파견하는 만큼 초청자인 중국 측이 자신들의 원하는 바 대로 공연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협조해주길 바랬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관람 인사의 격이나 의전 등에 많은 신경을 썼고 정작 세세한 공연 내용에 관해서는 서로 믿거니 자기 편할 대로 생각했다가 뒤늦게 서로 심각한 오해가 있었음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북한 측이 사전 약속과 달리 실제 공연에 "단숨에!"를 몰래 끼워 넣으려다 중국 측이 이를 막판에 간파해 문제가 불거졌을 수도 있습니다.

한 외교당국자는 중국이 북한을 예전의 특수 관계가 아닌 정상국가 관계로 대하겠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는데도 북한만이 여전히 허니문시절의 단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때 혈맹이었던 북중 양국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위험한 '이심전심' 게임을 벌이다 서로 체면을 구기고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 겨울 음악 외교를 통한 훈풍을 꿈꾸며 "단숨에!" 달려온 모란봉악단은 결국 찬 바람을 일으키며 "단숨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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