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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SBS 전망대] 당구장 표시는 1300년 전 백제 때도 썼다?

* 대담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 한수진/사회자:
 
위대한 유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황평우 관장과 함께합니다. 관장님 어서 오세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오늘은 어떤 얘기해볼까요? 
공주 공산성 백제시대 건물군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오늘은 특별한 발굴이 된 게 있는데요. 공산성이 백제유적으로서 처음으로 세계유산등재가 됐는데 여기서 완형 사다리가 천 2~3백 년 전의 완형 사다리가 발견이 됐어요.
 
▷ 한수진/사회자:
 
완형.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사다리가 부분적으로 형태가 발판만 나왔다거나 옆에 그냥 나온 게 아니라 6미터짜리 사다리가 고대로 나와 있습니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잠시만요. 깜짝 놀라시기 전에 일단 공산성부터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래요. 공산성이 이제... 한성 백제가 굉장히 길었죠. 지금 강동 송파 이쪽 지역이고요. 여기서 백제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서 웅진, 지금의 공주로 후퇴를 했죠. 그래서 웅진에서 64년 정도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또 후퇴하면서 지금의 익산, 사비시대 그래서 백제는 한성, 백제, 웅진시대, 사비시대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지금 공주 같은 경우는 웅진시대의 성이였고요.

이때 보면 한 2km정도에 성인데 이 안에 마을들을 다 퇴거 하고 난 다음에 발굴조사를 했더니 처음엔 한 30동의 건물지가 나왔어요.

그 다음에 지금 현재에도 이번에도 발굴하다 보니까 31동의 건물지가 나왔는데 육각형 형태의 건물이 나왔거든요. 육각형이라는 건 제사를 지내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장방형 긴 건물이 나왔는데 여기는 아마 관청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 다음에 부엌이 있는 건물이 있고 없는 건물도 있었어요.

이런걸 보면 일반 생활하는 건물과 관청건물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그 다음에 6미터짜리 도로도 나오고요 3미터짜리 도로도 나오고 더 중요한건 도로 옆에 배수로 까지 나왔어요.
 
▷ 한수진/사회자:
 
배수로 
공주 공산성 백제시대 건물군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네 그러니까 지금으로 보면 굉장히 계획된 도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조사하다가 이번에 찾아보니까 이런 것도 있어요. 가운데 연못도 크게 있었어요.

연못이 있었다는 이유는 뭐냐면 공산성이 공주 앞에 있는 강에 있었는데 그 강에서 물이 어느 정도로 투입이 되냐면 물이 들어왔다 나왔다 이걸 조절을 해줍니다.

물이 많이 찼을 경우에는 산성 밑으로 해서 삼투압으로 해서 물이 안쪽 연못으로 들어오고요 그 다음에 비가 많이 왔을 때는 조그만 연못에 담아놨다가 천천히 빠져나가기도 하고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물 조절을 해주는 연못들이 있었는데 이 연못 안에 연못을 발굴조사를 해보니까 이게 방형으로 연못이 나왔거든요.

보니까 여기에 완형으로 된 6미터짜리 사다리가 있었고, 그 다음에 어떤 게 있었냐면 높이가 사람하나 발바닥으로 올라가는 높이가 50cm간격으로 고대로 나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너비가 어느 정도 되냐면 70~80cm 인데 지금 까지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목각의 형태의 사다리 발굴은 발판은 발견이 된 적이 있어요.

올라가면서 발판은 발견이 된 적이 있는데, 이렇게 6미터짜리 70cm 그 다음에 발판 높이가 50cm간격으로 11개가 정확하게 나온 게 이번에 처음입니다.

그래서 보시면 왜 어떻게 해서 남아있었나 굉장히 궁금한데요. 진흙에다가 묻혀 있으니까 공기도 안 들어가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안 들어가니까 오히려 더 완벽하게 남아있었죠.
 
▷ 한수진/사회자:
 
진흙 속에 있으면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네, 혹시 예전에 전 어릴 때 기억이 나는데요. 어머니들이 진흙 속에다가 박달나무 같은 걸 푹 파묻어 놓고 몇 년 동안 두고 난 다음 꺼내서 도마를 만든 걸 봤거든요. 왜그러냐면요. 박달나무를 진흙 속에 넣어두면 굉장히 단단해진답니다. 이 재질이 뭐냐고 하면요 참나무입니다. 참나무가 있으니까 오히려 이 안에 진흙 속에 있다 보니까 세틀멘탈되서 안정화가 돼서 천 몇 백 년 동안 그대로 갔던 거죠. 그래서 이게 그대로 남아있었고, 나무가 일반적으로 사다리를 생각하면 지금의 사다리 모습과 똑같아요. 그 발판을 옆에다가 고정하려면 우리 지금 같으면 못으로 박아서 고정하겠죠. 그런데 거기를 촉을 내서 끝을 팠습니다. 기둥에다가 파서 껴놓은 거죠.
 
▷ 한수진/사회자:
 
그게 오히려 더 견고하나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럼요. 못으로 박으면 물론 백제는 철의 나라니까 철이 있었겠지만 우리 백제의 공구들을 보면 짜 맞춤 형태의 백제건축의 미학 그대로 다 나타날 수 있는 거죠.

건축 공법이나 그래서 오히려 보면 이런 것들이 백제의 목재기술에 우수성을 나타내주고 조금만 더 연대측정을 한번 해보면요 이 부분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이 왜성 쌓는데도 얼마나 도움을 줬을까 이러 부분들 까지도 연구가 나오고요.

그 다음에 이런 사다리가 고려나 조선까지 지금 까지 연결 되서 굉장히 중요한 기술 도구의 전파성 이런걸 알 수 있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지금 연못 말이죠. 사진을 보니까 대단하네요. 연못이 둥근 건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고요.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계단까지 있고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방향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게 방향이고요. 이 왼쪽에 방향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 한수진/사회자:
 
금강의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고 저장할 수 있게 되어있다고 하네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래서 이게 강하고 성이 맞붙어 있어요. 비가 많이 와서 금강이 넘칠 경우에는 공산성 안으로 들어오겠죠? 근데 이 연못들을 곳곳에 두면서 스펀지 역할을 해줬던 거예요.

그래서 이 연못이나 호수를 만들어서 성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고 그 다음에 성 안에서 제일 취약한 게 외부공격이 아니라요 외부에서 비가 많이 왔을 때 물이 차버리면 굉장히 성이 위험하거든요.

그러니까 비 온걸 성 안에서 받아줘서 천천히 금강으로 내 보내는 거죠. 이게 스펀지 역할과 완충역할을 해줬던 건데. 근데 이 물은 쭉 빠져버리지 않습니까?

근데 이 물을 안 빠져버리게 하는 방법은요. 조선시대 지금의 방수제 이게 진흙입니다. 진흙을 먼저 만들고 호수를 만들어서 진흙을 발라서 해주면 그게 마르면 토기 역할을 하는 거죠.

물을 적당히 받아서 천천히 빠지게 해주고 급격하게 빠지거나 외부로 빠지거나 증발되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게 진흙역할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렇군요. 사다리도 신기한 게 어떻게 거기에 딱 들어있었을까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 다음에 보면 출토 유물도 다른 것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요. 제가 보니까 되게 재밌는 게 왕자 길자 구자 공자 많이 나오는데 요금 어른들이 얘기하는 당구장 표시 있죠. 중요할 때 쓰는 문양 요런 문양도 백제 시대 때 나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이게 어디에 나와 있다는 거예요? 이런 글자들이?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 안에 기와 조각들 있죠. 기와조각들이 많이 나왔는데 기와조각에는 어디서 만들었다 그 다음에 누구 꺼다 사용하면서 표시를 합니다. 이게 내꺼다 니꺼다 어느 부서 꺼다 여기에 재미있는 표시로 당구장 표시도 나왔다는 거죠.
 
▷ 한수진/사회자:
 
당구장? (웃음)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당구장 표시는 1300년 전에 백제 때부터 썼다 (웃음)
 
▷ 한수진/사회자:
  
황평우 관장님 잘 들었습니다.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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