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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바리케이드로 막았지만…단순 명쾌한 구호의 유혹

[월드리포트] 바리케이드로 막았지만…단순 명쾌한 구호의 유혹
이기면 기쁘고, 지면 슬프다. 이 자연스러움이 이번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우파 야당 공화당이 최종 승자였는데 환호하지 못했다. 낮은 지지율에 비해 선전한 집권 좌파 사회당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자처럼 행동했다. 3당 3색. 머리 속에 이번 선거 결과가 아닌, 2017년 차기 대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광역 자치단체장(도지사)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였다. 6일 치러진 1차투표에서 국민전선은 전국 득표율 1위로 제1당에 올라 돌풍을 일으켰다. 본토 13개 도 가운데 6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민전선은 첫 도지사 배출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일주일 후 13일 실시한 2차투표에서 꿈은 사라졌다. 결선투표 제도 때문이다. 프랑스는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0% 이상 득표한 후보끼리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유권자들은 1차투표 때 자유 투표 성향을 보이지만, 2차 투표에서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최선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의 후보에 표를 몰아줘 최악의 후보를 떨어뜨린다.
 
● 좌우파, 극우 바리케이드를 쳤다
         
2차 결선투표에서 프랑스 전통 좌,우파 지지자들은 국민전선을 가장 나쁜 후보로 판단했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린 르펜 대표
르펜 대표는 북부 한 도에 출마해 1차 때 40.6%를 얻어 압도적 1위였지만, 2차에서 득표율 42%로 표를 조금 늘리는 데 그쳤다.

1차 때 25%를 얻어 2위였던 공화당 후보는 2차 때는 배가 넘는 58%를 득표해 당선됐다. 1차 때 3위를 기록한 사회당 후보의 사퇴로 좌파 지지자들이 우파 후보를 지원한 덕분이다.

극우파에 대항하는 좌, 우파의 바리케이드 전략이다. 전국적 현상이었다. 유권자들은 1차 때 49.9%가 투표에 참여했지만, 2차 때 58.4%라는 높은 투표율로 국민전선 봉쇄 대열에 합류했다.

2002년 대선 때도 좌, 우파가 결집해 결선투표에 오른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 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유권자들이 뭉치면 극우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극우 돌풍을 찻잔 속 태풍으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공화당을 이끄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선거 이후 “극우와 타협을 거부하고 중도가 단결하는 원리는 미래에도 유지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

● 국민전선 또 기록 경신…”우리를 막지 못한다”

패배한 국민전선은 슬퍼하지 않았다. 도지사 배출이라는 상징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지만, 국민전선은 이번 선거에서 또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방의원 수가 전체의 9%에서, 5년 만에 27%로 3배 증가했다.

국민전선의 지방의원들은 지역 기반을 다지며 차기 대선의 발판 역할을 할 것이다. 전국 득표수도 682만표로 역대 최고 지지를 기록했다.

2012년 대선에서 르펜 대표가 받은 642만표 보다 40만 표가 더 늘었다. 르펜 대표는 이런 기록을 나열하며 “무엇도 우리를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강한 정치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 좌우파 “극우는 여전히 위험…우리에 대한 경고”
         
사회당의 발스 총리는 “국민전선이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극우의 위험은 제거되지 않았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사회당의 진짜 고민은 차기 대선 1차 투표에서 3위로 처져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진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으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올랑드 대통령(왼쪽)과 사회당의 발스 총리(오른쪽)
최종 승자인 공화당 역시 반성문부터 썼다. 사르코지 대표는 “국민전선의 높은 득표율은 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에 보내는 경고”라며 “후보들은 결코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지율로는 르펜이 차기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올라 공화당 후보와 승부를 겨룰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은 이를 막기 위해 더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다.
 
양대 정당이 말하는 위기와 경고음은 현안에 대한 대응 능력 부재에서 비롯된다. 양당은 프랑스의 고질적 문제가 된 경제, 실업, 이민자, 난민, 테러에서 표심을 사로잡을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허전함을 국민전선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국민전선의 깃발은 단순하다. 유럽이란 큰 그림을 보지 말고,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적이고 공격 대상이다.
지난 11월 파리 테러 이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프랑스 국회
반 유럽연합, 반 이민자, 반 이슬람이 핵심 정책이 되는 이유다. 반유대주의, 인종주의를 떠올리게 한 장 마리 르펜 전 대표를 쫓아내 악마 이미지도 어느 정도 벗겨냈다.

자신감이 붙은 르펜 대표는 선거 직후 “출신을 따지지 않을 테니 국가 개조에 동참해달라”고 역설했다. 국가 개조라는 기치 아래 응원군을 모아 표를 확장해 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민전선을 극우 보다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마당에 국민전선의 정책이 기성 정당보다 효과적이고 올바른가 하는 질문은 서생이나 할 일이다. 유권자들은 무능한 정치세력 대신, 위험하지만 단순 명쾌한 구호의 유혹에 시나브로 빠져들고 있다.

대선까지 1년 반이 남지 않았다. 양대 정당이 국민전선이란 먹구름을 걷어 내기엔 시간도 능력도 부족해 보인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다시 전략투표를 하느냐, 새 길을 가보느냐 선택을 강요받을 것 같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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