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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밥은 먹는지"…'야스쿠니 폭발음 사건' 피의자 어머니의 모정

[취재파일] "밥은 먹는지"…'야스쿠니 폭발음 사건' 피의자 어머니의 모정
"한국전력 취직하고 싶어했어요. 자격증 따서…"

어렵게 연결된 통화. 어머니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투였습니다. 군산 근처 한 섬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그날의 소식은 청천벽력,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나는 안 믿었어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TV화면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모자이크로 덧칠돼 있었습니다. '야스쿠니 폭발음 사건 용의자 전 모 씨'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며칠 뒤엔 일본 기자 10여명이 섬까지 찾아왔습니다. 식당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낚시배를 얻어타고 섬을 빠져나왔습니다.

"이상하게 시간이 안 맞았어요. 3개월 전쯤 연락한 게 마지막이에요."

아들은 2009년 공군 부사관으로 입대했습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대학을 보낼 수 없어 택한 차선책이었습니다. 군복무 기간에도 아들은 틈틈이 전기기사 시험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한전 같은 큰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했던 아들.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매 달 백만원씩은 꼬박꼬박 모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안쓰러워 가끔 뭍에 나올때면 옷 한벌씩을 사주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 전 씨와 마지막 연락을 주고 받은 건 지난 9월쯤입니다. 어머니는 "만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군산의 한 원룸에 살았던 전 씨가 갑자기 행적을 감춘 시기와 겹칩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여전히 의문 투성이입니다. 아직 전씨가 진범인지, 그렇다면 동기나 사건 경위가 어떻게 되는지 사건 전말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본에 재입국한 배경도 석연치 않습니다. 결국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불만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수 있다"거나 "은둔형 외톨이, 혹은 외로운 늑대일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의 의혹 제기만 확대·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이사를 했겠죠. 생활 터전을 옮길 수 있잖아요."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 폭발음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9일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전모(27)씨가 두달 전까지 산 전북 군산의 원룸건물 내 2층(붉은 선 안).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언론은 전 씨의 과거 행적을 좇았습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전 씨가 살았던 군산을 이 잡듯 뒤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소룡동의 한 원룸에서 이사를 한 이후의 행적은 도무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 씨가 최근 3개월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의문을 풀어줄 열쇠가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 씨의 어머니에 주목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전 씨가 최근 3개월 간 어디서 누굴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어머니라면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의외의 단서가 여기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머니 역시 전 씨가 이 기간 전 씨의 행적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이사를 간 것 아니겠느냐고 짐작할 뿐입니다. 결국 전 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검찰과 경시청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화됐습니다.
"외교부나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 받은 게 없어요. 밥은 잘 먹고 있는건지…"

지난 11일, 일본 경시청 공안부는 전 씨에게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습니다. 이후 수사 진행상황은 일본 언론을 통해 간간이 전해질 뿐입니다.

어머니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벌어지면 어쩌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어머니는 외교부나 경찰로부터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본인이 아들의 상태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소식도 뉴스를 통해 들을 뿐입니다.

분명 전 씨는 현재 야스쿠니 폭발음 사건의 피의자입니다. 상황에 따라선 혐의가 입증돼 일본 법정에서 유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국민이기도 합니다. 외교부나 경찰이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외교부는 전 씨의 상세한 신원을 일본 언론이 공개하자 일본정부에 공식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씨의 건강 상태 수준의 정보를 가족들이 통보받지 못하는 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밥은 잘 먹고 있다더라" "잠도 5시간 이상은 재워준다고 한다" 정도로도 어머니의 걱정을 달래기엔 충분할텐데 말입니다. 

(P.S. 결국 전 씨의 어머니는 14일 서울로 올라와 외교부를 직접 찾았고, 외교부 관계자와의 만남을 그제서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20여일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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