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ained] 떨어진 소방장갑의 비밀

SBS 뉴스

작성 2015.12.08 18:16 수정 2015.12.08 22: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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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가 끓고 있습니다. 이 냄비를 식탁으로 옮길 때 우리는 장갑을 낍니다.

손이 데지 않으려면, 너무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 불과 맞서 싸워야 하는 소방관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화재 현장에서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는 소방대원이 실제로 착용한 소방장갑입니다. 왜 이런 장갑을 끼느냐? 물품이 충분히 지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국 소방관 가운데 1/3은 장갑이나 랜턴 같은 필수 장비를 자기 돈으로 산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돈이 없어서 소방장갑 대신 목장갑을 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방화복을 여러 사람이 돌려 입는다는 얘기들도 나왔죠.

그런데 장갑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근무하다 다쳤을 때 소방관 중에 나랏돈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사람은 12% 정도였습니다. 바꿔말하면, 소방관 10명 중의 9명은 근무하다 다쳤어도 자기 돈으로 병원비를 냈다는 거죠.

‘이게 말이 돼?’이렇게 생각하실 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더 말이 안 되는 건 이런 문제가 몇 년째 지적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일단 전국 소방관 대부분이 국가직 공무원이 아니라 지방직 공무원이라는 점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소방 조직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는 중앙정부 기관이지만, 일선에서 뛰는 소방관 대부분은 중앙정부 소속이 아니라 각 지자체 소속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방관에게 지급되는 물품은 국가 예산이 아니라 광역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사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산이 넉넉지 않은 지자체 소속 소방관은 장갑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떨어진 장갑 같은 개인 장비를 교체하고, 부족한 장비를 보급하는 데 필요한 돈은 720억 원 정도입니다.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헬기 사업을 하다가 낭비했다고 감사원에서 지적받은 돈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다쳤을 때, 자기 돈으로 병원을 가는 데는 돈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방 기관에 대한 행정 평가 점수 때문입니다.

일하다 다친 사람이 많아지면 자신이 속한 소방서나 소방본부가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걸 피하려고 조용히 자기 돈 내고 치료를 받고 있는 겁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아프다는 얘기도 못 하는 겁니다.

이렇게 일하는 소방관 심정은 어떨까요? 추정할 수 있는 수치가 있습니다. 2010년 이후 일하다 숨진 소방관은 33명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많은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울증 등 스트레스성 장애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결국 뜨거운 불길보다 적절한 장비나 치료도 못 받는 현실이 소방관들에게는 더 큰 적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자며, 소방관들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방관 권익 보호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다 좋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책도 줄기차게 나왔었다는 겁니다. 왜 대책은 실현되지 못한 걸까요? 혹시 소방관들이 제대로 된 장갑도 못 끼고 불을 끄고, 다쳐도 마음 놓고 병원도 못 가는 이 현실에 대한 대책을 만드시는 분들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안전한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겁니다.

소방관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일 겁니다.

기획 : 임찬종·박원경
편집/CG :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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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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