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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막으려 '고군분투'…정상회담 끝내 무산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또 1994년 6월 북핵 위기로 전쟁위험이 고조됐을 때는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김일성 사망으로 정상회담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안정식 기자입니다.

<기자>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시작된 1차 북핵 위기는 94년 들어 전쟁 위기로 발전했습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94년 6월 레이니 주한 미 대사는 청와대 관계자에게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의 민간인들을 철수시키는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레이니 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김영삼 前 대통령/2009년 3월 증언 : 65만 우리 군대의 한 사람도 이 전쟁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내가 통수권자로서 그렇게 하겠다.]

최고조에 다다랐던 북핵 위기는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진화됐습니다.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밝히면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까지 합의됐습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1994년 6월 : 과거식으로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정상회담) 장소하고 시간만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중앙TV/1994년 7월 : 김일성 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1차 북핵 위기는 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지만, 이후 강릉 무장공비 사건과 황장엽 망명 등을 거치면서 김영삼 정부 내내 남북관계는 순탄치 못했습니다. 

(영상편집 : 우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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