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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관객 가득찬 공연장…나타나지 않는 연주자?

관객들이 가득 찬 공연장, 독주회의 주인공이 갑자기 아프다면 어떻게 될까요? 공연을 기획했던 연주자 본인에게는 악몽 같은, 공연을 기대하던 관객들에게도 참 황당하고 실망스러운 순간일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지난주, 서울의 한 음악홀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호른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해외에서 온 이 음악가의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예정되어 있던 시각에도 독주회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10분이 지나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관객들은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공연 책자를 읽거나 함께 온 가족, 친구들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공연장의 관객석 조명이 꺼지고 무대의 한쪽 문이 열렸습니다. 공연의 주인공이 아닌 피아노 반주자만 나오는 모습에 관객들은 약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나온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연주자가) 건강상태가 안 좋아서 의사들이 와서 진료 중입니다. 지금 몸 상태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준비는 안 되어있지만 기다리시는 동안 짧은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당황한 관객들은 그의 연주를 들으며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옆 사람과 여전히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김재원 씨는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건반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굳은 표정의 관객들도 하나둘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누구보다 당황하고 있을 피아니스트가 혼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에 관객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관객을 향해 “제가 이런 곳에서 말해본 적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더 크게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해 관객석에선 웃음꽃이 피기도 했습니다. 

그에겐 이런 상황에 대비한 연주 목록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그때 곡을 선정해야했지만 한 곡, 한 곡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겪는 경우여서 엄청나게 당황했죠. 관객들도 다 자리 잡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관계자분께서 한, 두 곡만 부탁하셔서 관객들을 위해 흔쾌히 무대에 나섰습니다.” 끝내 본 공연은 취소되었고, 그사이 김재원 씨는 총 7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피아니스트의 열연으로 다행히 관객들은 웃으며 공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혹은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안내방송 한 번으로 공연 취소가 통보되었다면 관객들은 매우 마음이 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관객들을 달래려 최선을 다한 피아니스트의 모습에서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 취재: 하 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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