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창구로 지목돼 검찰 조사를 받았던 코스틸 박 모 회장에게 지난달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박 회장에게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는데 구형량의 2배가 선고됐습니다. 검찰의 구형량보다는 법원이 낮게 선고하기 마련인데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박 회장은 회삿돈 13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액수가 커 가중처벌 사안입니다. 재판부는 "지배주주로서 기업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해 경제정의를 왜곡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금액을 일부 갚아서 형량 감경 사유가 됩니다만 법원은 이를 감안하고도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코스틸 박 회장은 이른바 '재벌'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포스코그룹의 협력업체니까 중견기업 정도로 볼 수는 있습니다. 중견기업 대주주의 경제범죄에 대해서도 법원은 엄중하게 판결했습니다.
● '200억 원 횡령' '재벌'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형량은?
'재벌'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회삿돈 200억 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습니다. 횡령 액수를 단순 비교해도 코스틸 박 회장보다 70억 원 가까이 많습니다. 장 회장에겐 이전에 저지른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이른바 '동종전과'도 있습니다. 2004년에는 160억 원을 횡령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반성하고 있다.' '다시는 횡령하지 않겠다.' '회사사정이 어려우니 봐달라'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집행유예 직후인 2005년부터 또 횡령을 시작했습니다. 재범하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자비를 베푼 법원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코스틸 횡령사건과 비교한다면 법원이 장 회장의 형량을 더 낮게 선고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횡령한 돈을 어디에 썼는가도 중요합니다. 장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 도박빚을 갚는데 200억 원의 회삿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발생한 부득이한 손실을 메우려고 벌인 게 아닙니다. 개인범죄입니다.
● '1천200억 원 판돈'…도박빚은 8천만 원에서 200억 원으로
특히 장 회장이 미국에서 10여년간 베팅한 돈의 규모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보더라도 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돈 1200억원에 육박하는 돈입니다. 1990년 장 회장이 마카오에서 잃은 8천만 원의 도박빚은 25년 뒤 200억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기업 위기 상황에 기업총수의 과감한 베팅은 반등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총수의 결단이 '투자'가 아닌 '도박'이라면 기업의 미래는 없습니다.
● 동국제강, '총수의 부재' 보다 '오너리스크'가 더 치명적
그러나 장 회장은 자신의 일가에게 배당금을 몰아주기 위해 동국제강에 배당을 포기시키고, 개인 보유의 부실채권을 회삿돈으로 처리해 회사에 약 1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습니다.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 도박빚을 갚았고 가족의 부실채권을 회사에 떠넘겼다면 경영능력은 낙제입니다. 기업총수가 오히려 기업을 위기에 빠뜨린 당사자가 아닙니까?
결국 '총수의 부재'보다 '오너리스크'가 동국제강에 더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기업총수의 불법을 원칙대로 처벌했다고 해서 회사가 부도난 경우가 있었나요? 회사사정이 어려우니 선처해 달라는 장 회장과 동국제강의 명분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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