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당신이 오늘 잊지 말아야 할 이름…청년 전태일
일주일에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면 어떨까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의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주말에 쉬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그때는 일요일에도 쉬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노동자들이 일요일 휴무를 누리게 된 걸까요? 그 시작엔 스물두 살, 아름다운 청년이 있습니다.
45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비참한 노동 현실 속에서 한 청년이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불덩이가 된 채 쓰러졌지만, 청년은 다시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목숨을 바쳐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던 이 청년, 바로 전태일입니다.
45년 전 오늘, 자신의 몸과 함께 허울뿐인 근로기준법 책을 장작 삼아 노동자의 인권을 부르짖었던 전태일. 그는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자였습니다. 집이 가난한 탓에 학교는커녕 17살 때부터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사의 보조, 이른바 '시다'로 일하던 그는 자신보다 어린 여공들을 보며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 우연히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한자투성이인 책장을 넘기며 독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현실에서 노동자가 누리는 것들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후, 전태일은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함께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렸습니다. 노동 실태 조사 설문지를 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변하는 게 없었습니다.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이기 직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동환경개선을 이야기하는 전태일 앞에 나타난 경찰은 플래카드를 빼앗고 시위를 강경 진압했습니다. 마침내 전태일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노동의 현실을 알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 전태일의 일기 中
전태일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전태일의 죽음 직후인 1971년, 노동자의 집단 투쟁은 1,600여 건으로 집계돼,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정부는 결국 생전 전태일이 요구했던 정기 건강 진단, 일요일 휴무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현재 우리가 노동자로서 누리고 있는 권리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노동의 현실을 알리고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5년 전 오늘의 역사, 온몸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호소했던 전태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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