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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1월 11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취재파일] 11월 11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농업인의 날, 가래떡 데이, 보행자의 날, 지체장애인의 날, 눈의 날, 빼빼로 데이, 우리 가곡의 날, 젓가락의 날, 레일 데이, Turn Toward Busan (UN참전용사국제 추모행사일), 해군 창설기념일.

위에 적은 기념일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날을 지칭한다. 11월 11일이다. 기업 마케팅 탓에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이런 기념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기념일도 있다. 왜 굳이 11월 11일에 이렇게 많은 기념일들이 몰린 것일까.

11월 11일은 법정 기념일로 치면 농업인의 날이자, 보행자의 날이다.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이 된 것은 한자 모양 때문이다. 十一월 十一일로 쓰고, 모양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이 시기에는 수확이 마무리되고 농민들이 한 숨 돌릴 수 있는 때라고도 한다. 1996년에 첫 농업인의 날이 시행됐다고 하니, 올해로 벌써 20년째다.

하지만, 제과 업체와 유통업체의 ‘빼빼로 데이’ 마케팅이 워낙 거세다보니 정부도 이른바 ‘데이 마케팅’이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가래떡 데이’다. 누구나 추측할 수 있듯이 11이 긴 가래떡 모양을 닮아서라고 한다. 2006년부터 시행됐으니, 가래떡 데이도 올해로 벌써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형 디저트를 판매하는 매장 등에서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정부 주도 행사 정도로 그치고 있다.

두 번째 법정기념일은 보행자의 날이다. 국토부는 지난 2010년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에 따라 매년 11월 11일이 보행자의 날로 정하고 행사를 개최해 왔다. 보행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라는 게 당시 국토부의 설명이었다. 11이 사람의 다리를 연상시켜서 이날로 정해졌다고 한다.

11의 모양이 특이하고, 같은 숫자가 배열되어 있어서 기억하기도 쉽다. 또 빼빼로 데이로 익히 알려진 날이다 보니 이날을 기념이로 삼고자하는 지자체나 민간 단체들이 많다. 지체장애인협회는 2001년부터 이 날을 지체장애인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해왔다. 지체장애인의 직립을 희망한다는 취지이다. 11이 기차의 레일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코레일에서는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11월 11일, 이른바 ‘레일 데이’에는 승차권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니 열차를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활용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이날을 우리 가곡의 날로 부른다. 우리 가곡의 날을 제안한 ‘아름다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은 2005년 우리 가곡의 날을 지정할 당시, 11월 11일을 일부러 택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 날을 이용해서 청소년들이 우리 가곡을 좋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올해로 벌써 11년째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날이다.

대한안과학회에서는 이날을 눈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데, 이번 한 주는 ‘눈 사랑 주간’이다. 눈 목(目)이라는 한자에서 11일 모양을 볼 수 있다는 설명도 있고, 11이 사람의 웃는 눈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도 있다. 이렇게 11월 11일을 기념하는 날이 많은데, 하나가 더 추가될 지경이다. 올해 처음 젓가락 축제를 여는 청주시는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한다.

이밖에도 과거의 이날 특정한 역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기념일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해군 창설 기념일이 그렇다. 해군 설명에 따르면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고 손원일 제독이 중심이 돼 창설한 해방병단을 모체로 1948년 정식 발족했다. 45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올해로 벌써 70주년째다.

여기에 1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도 11월 11일이다. 국가보훈처와 부산시는 6.25때 희생된 UN참전 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날로 삼고 있다.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이라고 불리는 행사는 부산 UN 기념공원을 향해 묵념을 하며 이들의 희생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기념일들을 다 살펴보고 나니, 11월 11일이 어떤 날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동안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 정도로만 기억돼 왔다. 빼빼로 데이보다 더 오래된 기념일이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과업체들의 마케팅 영향이 그만큼 압도적이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 양윤 교수는 "빼빼로 데이가 일종의 랜드마크가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양 교수는  '빼빼로 데이와 각 기념일들의 대상층이 다른 만큼 빼빼로 데이의 인지도나 인기를 뺏어온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빼빼로는 '쾌락재'여서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주고 있는데 이런 즐거움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기념일이 빼빼로 데이의 아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철도 이용자에게는 11월 11일이 레일 데이로 기억되는 등 국한된 층에는 인지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찌됐든 11월 11일을 막대기 모양의 과자 먹는 날로만 알고 지나가기에는 이미 많은 기념일들이 존재하고 있다. 저 많은 날들 중 11월 11일을 어떤 날로 기억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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