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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하느님에게 보내는 돈 봉투…누가 보냈을까?

[월드리포트] 하느님에게 보내는 돈 봉투…누가 보냈을까?
▲ 프랑스 파리에 있는 우체통
 
프랑스에서 희한한 돈봉투가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중부 비시 근처의 소도시 쿠세(cusset)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7월부터 우체통에서 수수께끼 같은 편지가 수거되기 시작했다. 수신인은 ‘하느님’이라 적혀 있는데, 발신인의 이름은 없다. 봉투는 늘 같은 우체통에서 발견됐다.

지역 신문인 라 몽타뉴(La Montagne)가 소문을 확인해보니, 우체국은 수상한 편지가 오고 있다고 인정했다. 봉투 안에는 평균적으로 200~300유로(25만~37만원) 가량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우체국은 편지가 몇 차례 왔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4개월 동안 4천 유로(500만원)가 모였다는 사실은 공개했다.

우체국은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우체국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현금을 보관해 두기로 했다. 발신인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결론을 내리고 싶었을 것이다. “발신인이 돈을 보내고 싶어하는 ‘하느님’은 누구일까? 하느님의 것이라면 누구에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당연한 의문이다.

프랑스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면 가톨릭에서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는 중세까지만 해도 가톨릭 왕국이었다. 공식적으로 가톨릭 국가를 선언한 최초의 나라였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프랑스에서 가톨릭은 신-구교 갈등과 대혁명을 거치면서 기세가 꺾였다. 1905년 마련한 정교 분리의 원칙, 라이시테(laïcité)는 가톨릭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

라이시테는 ‘비종교성’ 원칙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법안으로 프랑스 공화국은 어떤 종교도 공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경제 지원을 하지 않게 된다. 국가는 종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종교도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당시 보수적인 가톨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진보파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너머 현대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이념으로 라이시테가 떠오른 것이다.

이 원칙이 적용되면서 프랑스인의 공공생활에서 종교는 금기사항이 됐다. 학교에서 기독교인은 십자가를 해서는 안되고, 유대인은 빵모자, 이슬람은 차도르를 착용할 수 없다. 거리나 공원에서 종교행사는 우리나라와 달리 꿈도 꾸지 못한다. 프랑스 학교 급식에서 벌어지는 돼지고기 논란도 라이시테에서 비롯된다.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해서, 돼지고기 대체 메뉴까지 제공할 의무는 없다는 게 비종교성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수파는 주장한다.

라이시테는 탈종교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12년 ‘갤럽’ 조사에서 프랑스인의 37%는 종교가 있고, 34%는 종교가 없으며, 29%는 무신론자라고 응답했다. 종교에 대해 국가가 공식 조사를 할 수 없게 금지하고 있어, 정확한 통계는 아닐 수 있다.

아무튼 1980년대 초 65%가 신의 존재를 믿었던 것에 비하면 추세상 종교가 크게 약화하고 있다. 매주 성당에 나가 미사를 보는 경우도 4.5%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느님의 존재감이 미약한 사회에서 익명의 발신인은 왜 하느님에게 돈 봉투를 보냈을까 여전히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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