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 자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하듯이 프랑스인들은 간단한 식사를 고를 때 햄버거냐 케밥이냐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20년 전쯤 독일을 거쳐 들어온 터키의 케밥은 이제 프랑스에서 1초에 10개씩 팔릴 정도로 급성장했는데요, 이렇게 잘 나가던 케밥이 요즘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서경채 특파원이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프랑스 남부 베지에라는 도시의 로버트 메나르 시장이 안티 케밥을 선언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유대 기독교의 나라인데 현재는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운을 뗀 뒤 식당 분야에서도 케밥이 너무 많다고 강조한 겁니다.
이어 그는 베지에 시에 케밥 식당이 스무 곳이라며 앞으로 시의 승인 없이는 더는 열 수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그의 망언이 알려지자 페이스북에서는 베지에 시에서 케밥 국제 축제를 열자는 제안이 올라와 벌써 3만 명 이상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중동 음악을 틀고 중동 춤을 추며 다양한 케밥을 맛보는 행사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지에 시청 앞에서는 수십 명이 모여 케밥을 먹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처럼 인터넷에는 "나는 케밥이다"라는 구호마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에 질세라 자신의 트위터에 베지에 시가 케밥의 수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거듭 맞섰습니다. 케밥을 먹으면 기독교 문화가 이슬람화할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마치 한국인이 초밥을 먹으면 일본인이 될 수 있으니 일식당은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는데요, 그럼에도 메나르 시장이 케밥을 들먹인 이유는 다음 달 치러질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반 이민정책을 외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국민전선은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의 세금을 이민자들에게 우리의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전선이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은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데 국민전선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늘어나는 케밥 식당을 가리키며 무슬림이 이 땅을 점령하고 있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는 대부분 웃고 넘기겠지만, 일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반 이민자 진영이 케밥을 터부시하고 프랑스가 백인 기독교인의 나라라는 도그마까지 세우고 나선 이유인데요, 어느 사회든 이런 터부와 도그마가 판치면, 그 사회는 갈수록 야만화하고 갈등은 증폭되기 마련입니다.
▶ [월드리포트] "기독교인 나라에서 케밥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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