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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올바른 교과서'와 '100% 대한민국'

[취재파일] '올바른 교과서'와 '100% 대한민국'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3년 전 이맘때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100% 대한민국'을 연일 강조했습니다. 후보가 가는 곳마다 연설과 방명록은 '100% 대한민국'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땐 '100% 대한민국'의 의미가 무엇일까, 사실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3년이 흐른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보와 함께 '100% 대한민국'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퍼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올바른 교과서'에 대한 정의

정부가 지난 4일 확정 고시를 하면서 논란 끝에 '올바른 역사 교과서'가 탄생을 앞두게 됐습니다. 국민들의 반감을 고려해 국정 교과서라는 용어 대신 채택된 용어였습니다. 하지만, '올바르다'는 단어는 제게 '100% 대한민국' 만큼이나 많은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올바름에 대한 정의를 누가 내릴 수 있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가 없어도 권력자가 올바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지 의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올바름에 대한 정의를 제시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정부는 올바름을 거론하며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역사교과서는 '좌편향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검정 체계를 통해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교정하기가 어려우므로 국정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좀 더 객관적인 역사를 가르치고, 자긍심을 고취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국정화 자체에 대한 반발은 물론, 정부의 이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회적 여론이 거셌습니다. 전국 66개 대학의 교수 580여 명이 집필 거부 선언을 했고,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반대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전·현직 편찬위원장 8명 중 5명은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나머지 3명도 찬성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역사를 미화해 자긍심을 고취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명암을 통해 교훈을 얻고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언론에 줄지어 실렸습니다.

● 이념 대결의 도가니에 빠진 정치권

정부는 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확정고시 일정도 앞당겼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올바른' 교과서가 추진되면서 사회 갈등은 어느 때보다도 증폭됐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역사교과서의 객관성과 균형을 주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권의 좌우 이념 대결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여당은 한동안 이념 편향적인 거친 말들을 쏟아냈고 야권도 강하게 성토하면서 정치권은 말 그대로 이념의 도가니가 됐습니다.

여권에서 교과서 국정화의 총대를 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선생님들이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보는 교사용 지도서는 그 내용이 완전히 빨갛다"며 색깔론을 폈고,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 교실인지 종북좌파 이념 혁명전사 양성소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북한 시각으로 서술된 교과서를 바로잡으려는 정부를 반대하는 건 종북 꼬리표를 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야권도 강하게 대응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의 10월 유신이 대한민국 헌정을 유린했다면, 딸의 10월 유신은 대한민국 역사를 유린하려고 한다"고 주장했고,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은 나치 선전부장 괴벨스의 추종자"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야권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국정교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 50% 배제해 100% 대한민국 만들기?

박근혜 대통령은 100%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했지만, 국회는 물론 국론이 두 동강 났습니다. 국회의 한 축인 야당은 한동안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한 채 국회 밖으로 나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여권 내에서는 좌파 혹은 이익단체로 매도됐습니다.

1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지만, 정부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좌우가 100% 통합해 하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으로 분열됐던 겁니다. '100% 대한민국'의 의미는 이념과 계층,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통합이 아니라 '올바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을 배제 혹은 거세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 대한민국 100% 포용으로 

올바름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이 아는 진리란 대부분 반쪽짜리다. 인간이 불완전 상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올바름'의 가치를 독점하겠다고 합니다. 정부가 내세웠던 100% 대한민국이, 혹시 국민을 하나의 관점으로 100% 통합하려는 것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정치권력이 시민들의 생각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선거 때 외쳤던 100% 대한민국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을 100% 포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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