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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월급 100만 원인데 "60만 원 도로 내놔라"…이공계 열정 페이

[취재파일] 월급 100만 원인데 "60만 원 도로 내놔라"…이공계 열정 페이

● 100만 원 들어오면 60만 원 반납…이공계 대학원생 잔혹사

A씨는 서울 4년제 공과대학을 다니는 석사과정 학생입니다.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인건비로 매달 100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A씨가 가져가는 건 40만원뿐 입니다. 본인 연구실에서 “인건비를 공동 관리하고 적절한곳에 쓰겠다”는 명분하에 60만원을 도로 가져간다는 겁니다. 연구실 내부 규정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그의 답변입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A씨 같은 석,박사 학생연구원들의 인건비를 도로 가져가 공동관리 하는 건 불법입니다. 국가연구개발 사업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서 ‘대학 특정연구기관 및 석박사 과정 학생인건비는 연구 책임자가 공동 관리해서는 안된다’고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공계 학생들의 인건비는 앞서 언급한 연구 과제, 이른바 '프로젝트'에서 나옵니다. 학업의 연장선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엄연히 처리해야 될 업무가 있고, 특히 석사 학생들에겐 간단하지만 품이 많이 드는 업무가 배정되다 보니, 시간을 많이 뺏깁니다. 서울 4년제 공과대학에 다니는 B씨는 “아침 8시에 연구실에 나와 밤 10시에 들어간다", "1년에 천 만원 가까운 등록금을 내고나면 생활비도 부족한데,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 1주일에 연구 과제만 30시간…미국 13시간, 일본 7시간

 과학기술 정책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공계 학생연구원의 평균 과제 참여 수는 2.2개, 학업 외에 연구 과제에 투입하는 시간은 1주일에 20~40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공계 학생연구원의 43%가 1주일에 30시간 이상을 과제 업무에 쓴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미국 학생은 13시간, 일본은 7시간으로 한국 학생들이 과제에 투입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습니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과제에 참여하는 이공계 학생 연구원들의 최저 인건비 보장이 중요합니다.
● 최저 인건비 못 준다, 동의서 써라

 미래부는 2014년부터 미래부 지원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최저 인건비를 보장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학생연구원 인건비지급 하한선’이라는 제도인데요, 과제에 참여하는 석사과정 학생들의 경우 한 달에 80만원 이상의 인건비를 보장해준다는 겁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좋은 취지의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 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B씨는 이 제도에도 사각지대는 있다고 합니다. B씨는 현재 최저 인건비 80만원보다 낮은 인건비를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B씨가 얼마 전 <최저 인건비를 못 받아도 동의하겠다>는 동의서를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불법적인 동의서는 전혀 아니고 제도의 일환인 ‘학생인건비 지급 하한선 적용 예외 요청서’입니다. 연구 책임자가 최저 인건비를 지급할 만큼 연구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구체적인 자료를 첨부해 요청서를 제출하면 80만원 이하로 인건비를 지급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책임자가 요청하지 않고, 학생이 직접 요청해도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2줄 짜리 간단한 사유와 함께 학생의 동의 서명만 제출하면 됩니다. B씨는 자신이 이 동의서를 반강제적으로 작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연구실의 지시 하에 ‘과제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많아 인건비가 부족하다’고 본인이 동의서에 쓰고 서명했다는 겁니다.

B씨는 “프로젝트에 실제로 참여하지 않는데 인원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끔, 이름만 올리는 학생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생이 많아 인건비가 부족하다고 동의서에 적어 낸건데, 서류상에만 등록되어있고 실제로 일을 하지 않는 학생도 있다는 겁니다. 또 “구체적인 근거 없이 학생 동의만 받아도 된다면, 교수가 시키면 반드시 해야 하는 현재 분위기에선 나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발생 할 수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교수님의 눈치를 보느라 불만을 제기하는 건 상상도 못한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 학생 인건비 관련 신고…최근 5년간 단 1건 뿐

 학생 참여 인원을 결정하고, 참여율을 판단하는 건 엄연한 교수의 권한이라 B씨의 일방적인 주장 일수도 있겠습니다.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객관적으로 평가 해 줄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은 실제로 신고를 하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합니다. 반론을 제기했다간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다는 겁니다. 본인이 평생 있어야할 학계에서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고, 당장의 학위 졸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미래부 산하 한국 연구재단에서 학생 인건비와 관련된 신고를 접수하는데, 실제로 지난 5년간 학생인건비 문제로 신고가 들어온 건 단 1건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경우 1시간 단위로 과제 참여 시간을 기록하고, 임금 지급이 부당하면 소송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인건비 지급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래도 부당한 인건비 지급 문제는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학생들은 “옛날부터 그랬다”가 아니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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