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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소녀 가장과의 우연한 인터뷰 그 후…

[취재파일] 어느 소녀 가장과의 우연한 인터뷰 그 후…
휴대전화 너머로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말없이 그 흐느낌에 공명했다. 지난 6월 하순. 어느 소녀 가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쓴 직후, 수많은 이메일에 답해야 했다. 소감이라기보다는 반성이었고, 또 고백이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그걸 뒷받침 못 하는 사회가, 꼭 그 책임의 일부분이 제 것 같아 맘이 짠합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서민들에게 멀어져 가고 심지어 약탈자로 행세하는 금융의 현실이 맘이 아픕니다…저를 포함해 한 명, 한 명 의식을 다잡다 보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개선되는 사회가 되겠지요”

“저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디자인을 전공했는데요…지금은 중년의 주부로 아이들 키우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부,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참 행복했습니다. 부디 그 꿈 포기하지 말고 디자인 공부 맘껏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저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막내가 대학 1학년이라 고생도 거의 끝나갑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인데, 부모가 무책임하게 한 행동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연대(連帶)의 확인이기도 했다.

“꿈을 잃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 그 꿈을 이루게 된다면 그 소녀도, 저도 무척이나 행복할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아시죠?”

“크게 도움을 줄 수는 없을 듯하지만,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다는 건 보여주고 싶습니다”

“학생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2세로 직장에 다닙니다. 매달 10만 원씩 대학 졸업 때까지 돕고 싶습니다. 제 마음이 변치 말게 저에게 기도합니다”

“31살 그냥 말단 대리입니다. 힘들 때 연락이나 한번 할 수 있는 언니가 되어주고 싶어요. 언니 노릇한다고 정작 자기 옆에는 언니 역할 해 줄 이가 없을 것 같아서요”

“몇 만 원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만큼이라도 잠시나마 쉬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고 친형제 또한 없는 직장인이에요. 적은 금액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제 스스로도 뿌듯할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어렵게 공부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정말 약소한 금액일 테고 그나마 반드시 매월 도움을 준다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숨 쉴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이라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계좌번호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밥이라도 먹이고 싶습니다”

“두 자식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저도 예전에 고금리 대출을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그 돈이 얼마나 아까운 줄 압니다. 저도 여유 있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 중인 학생입니다…정말 힘들고 지쳤을 텐데 지금까지 바르게 자라 온 그 아이가 너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직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아 생활하는 고시생에 불과합니다만, 제 식비에서 조금이라도 아끼고 모아 그 소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대한 관여를 걱정했다. 선의(善意)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라며. 직접적인 관여가 오히려 그녀가 어렵게 유지해 오던 생활의 틀을, 그 불안한 안정성마저 뒤흔들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난 다리가 되어 보기로 했다. 이후 말없이 그녀의 울음을 들어야 했고, 그 통화 이후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그녀도 그래야 했으리라. 그녀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건 그렇게 넉 달이 흐른 뒤였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 준 분들에게 전해 달라는 추신이 있었다.
어느 소녀 가장과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터뷰의 주인공 ‘소녀가장’입니다.

우선 사금융 대출은 인터뷰가 나간 달 월급으로 전부 해결했습니다. 생활비를 줄여가며 갚아 적은 금액이 남아 있었고 도와주신 덕분에 식비나 학업비 등의 지출이 줄어 조금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은행 대출은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갚아가는 중입니다. 내년 복학 전까지는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3월 이미 ‘LH 주거취약 전세자금지원’ 프로그램에 당첨된 상태였습니다만 지원금에 맞는 주택을 찾는 것이 어려워 당첨이 취소될 상황이었습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을 지원금에 보태 5평짜리 생활주택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학업 관련해서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보고 싶었던 인터넷 강의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관련 서적 이외에 좋아하는 역사나 경제학 책들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최근 시험에서 10점이 올랐습니다. 반대로 조금 우울한 소식이라면 저는 지난 8월에 보았던 포토샵 1급 자격증 시험에서 2점 차이로 아쉽게 낙방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다시 시험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지난 8월부터 쥬얼리 디자인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하게 되어 여러 실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휴학한 이후로도 3D 프로그램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게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도 장점이 되었습니다. 영어나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아는 덕분에 인턴으로는 적지 않은 금액으로 취직하게 되어 빚 상환이 조금 더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원하던 자동차 디자인은 아니지만 같은 계통이라 직업 관련한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나중에 취업할 때 좋은 경력이 될 것 같아 정말 잘 구한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응원해주신 덕분에 정말, 정말 좋은 일만 생겨서 어디서부터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보니 늦게 연락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솔직히 빚을 갚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식비를 좀 줄였을 뿐인데 그게 선생님께 걱정을 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2,500원 주고 사식을 사 먹고 있습니다.

주방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솜씨 좋은 동생이 집 밥을 책임지고 있구요. 보내주신 후원금은 공부나 집 보증금 같이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있습니다. 대출이야 어찌됐든 제가 쓴 돈이기에 월급으로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어린 제가 후원금을 받아 더 큰 수렁으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리지만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학생이기 전에 한 사회인으로서 돈에 대한 가치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쓰기 어려운 돈이지요.

솔직히 쓸 곳이 돌아오는 겨울에 동생 점퍼나 동생이 다니고 싶다는 학원뿐이기에 지출되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만 그 조차도 상의해서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지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무례하게 편지를 올리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올리는 이유는 도와주신 게 저희한테 정말 큰 의미였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부담스러워 마시고 앞으로도 종종 보낼 편지를 읽어주세요. 이번 편지처럼 앞으로도 보낼 편지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늦어졌다고 했다. 삶은 금세 바뀌는 게 아니지만, 우리가 발버둥치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줘 반가웠다. 그리고 그런 삶의 변화가, 우리가 잊고 있던 연대(連帶)로 이뤄질 수 있음을 알려줘 고마웠다. 언제일지 모를 다음 편지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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