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운명론자예요. 내가 찾아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저절로 내 앞으로 왔어요. 난 그걸 사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이죠. 그러다 보니 벌써 35년이 훌쩍 흘렀네요."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 '양촌리 김회장' '수사반장'….
많은 수식어로 설명되는 배우 최불암(75)씨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타이틀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입니다.
그는 이를 '운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수식어에 비해 이 타이틀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서울지역 후원회장을 맡은 데 이어 1985년부터는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며 봉사해왔습니다.
이에 재단은 10월 한달간 최불암의 전국후원회장 3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시유어겐'을 무대에 올렸고, 공연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에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그가 지난 세월 실천한 나눔의 행적을 기렸습니다.
최불암 씨와 인터뷰 내용입니다.
--후원회장 30주년을 맞으셨다.
묵묵히 봉사를 해오셨다.
▲어린이는 또 하나의 '나'로 보아야 한다.
묵묵히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위안과 사랑을 느낀다.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을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지난 30년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만남이 있었기에 삶을 소중히 잘살게 되었다.
이 나이에 느껴보는 감회이자 수줍은 고백이다.
(그는 이 답변을 손수 메모지에 적어서 왔다.)
-- MBC TV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이 금동이를 막내아들로 입양한 것이 계기가 돼 재단과 인연을 맺게되셨다고 들었다.
▲드라마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아이들을 돕는 일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흔쾌히 시작했다.
당시 내가 출연하던 '전원일기'와 '수사반장'의 배우들, 집사람(배우 김민자)이 출연하던 '보통사람들'의 배우들이 모두 후원에 참여하게 되면서 홍보도 많이 됐고 후원자도 많이 모이게 됐다.
후원자가 1981년부터 84년까지 7만명이 모이자 재단 미국 본부에서 고맙다며 나랑 집사람을 초청했다.
현지의 교육 프로그램을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영어라고는 '땡큐'랑 '노'밖에 모르는데 미국 가서 강의를 들으라니 웬 말인가.
통역을 붙여준다고 해서 갔고 열흘간 머물면서 나눔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전국 후원회장을 맡게 됐는데, 다시 2~3년 만에 후원자가 17만 명으로 늘어났다.
연기하는 시간을 빼면 재단 활동을 쫓아다녔던 것 같다.
(현재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자는 34만 명이다.)
--그사이 국내 나눔의 문화가 많이 성장한 것 같은지.
▲말해 뭣하나.
기업에 사회공헌팀이 생기고 개인들도 기부하고 후원하는 문화가 많이 퍼졌다.
예전에는 기부를 하면 돈이 투명하게 쓰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 재단도 아주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처럼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나눔을 독려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집사람도 청각장애우들을 돕는 사랑의달팽이 회장을 맡고 있고, '전원일기'에서 호흡을 맞춘 김혜자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수십년 활동하고 있다.
-- 30년간 해외 여러 곳을 찾아 봉사하셨는데, 지난 7월에도 케냐에 우물을 파주러 다녀오셨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한창 지쳐있을 때였다.
가기 전 예방접종을 수차례 맞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지만 이렇게 봉사하러 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했다.
사즉생(死卽生)이라고 생각하니 못할게 없었다.
현지에 가보니 처참한 게 상상이상이었다.
사람 몸의 물기가 70%라는데 거기 애들은 30%도 안되게 바짝 말라 있었다.
에너지가 없어서 눈을 뜨고 감는 동작조차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해야 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줬고, 아이들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얼굴에 맞는 모습을 봤다.
죽을 때까지 그 이상의 감동은 없을 것 같다.
너무나 큰 행복 덩어리를 가져왔다.
바람이 있다면 북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북한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여건만 되면 북한을 먼저 찾고 싶은데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배석한 재단 관계자는 "최 회장님이 북에는 아직 못갔지만 재단의 대북 지원 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등 늘 북한 아이들을 생각하신다"고 귀띔했다.
최불암의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 이번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예술감독을 맡으셨다.
▲나야 뭐 한 일은 없는데 다행히 공연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후배들이 어려워한다.
그래서 수십 명씩 모여서 찍는 드라마는 이제 못할 것 같다.
내가 알아서 분장실에서 자리를 피하니 촬영장 가면 외로운 싸움이 된다.
나랑 얘기하면 코드가 안 맞으니 죄다 인사를 하고는 도망가버린다.
앞으로는 하게 되면 무대로 가야 할 것 같다.
이번 공연과 같은 형식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다.
(SBS 뉴미디어부)
최불암 "35년이 훌쩍…북한 애들 생각에 마음 아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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