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의 정당성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재 국민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후자에 더 쏠려 있습니다. 즉 현 정부가 과연 어떤 내용의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란 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섣불리 예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제가 아는 어떤 교수님은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국정교과서의 윤곽이 보일 것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광복절 경축사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대통령 개인 또는 정권의 시각과 사관(史觀)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일제치하 친일 문제, 한국전쟁(6.25)과 남북 대결 문제, 군사독재정권과 민주화 과정, 산업화와 경제성장 같은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정 교과서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쓰게 돼 있지만 엄연히 현 정부의 관리 감독 아래 이뤄지기 때문에 큰 틀은 여기에서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이후 2015년까지 광복절 경축사를 세 차례 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게 그동안 뜨거운 논란이 돼온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15일로 명시한 점입니다. 2013년 경축사에서는 ‘정부 수립 65주년’이라 했고, 2014년에도 '정부 수립 66주년'이라 했는데 올해 경축사에서는 ‘건국 67주년'으로 바뀌었습니다.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아니라 건국일로 분명히 언급한 것입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과 진보 역사학계의 의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만약 1948년 8월15일이 건국일이 되면 일제치하 임시정부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도 어긋난다는 게 반대하는 측의 주장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로 규정했습니다. ‘시민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같은 것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전반적으로 산업화의 성공과 ‘한강의 기적’을 강조한 반면 ‘민주화’란 단어는 한 번만(2014년 경축사) 사용했습니다.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적게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3년 동안 경축사에서 ‘친일’과 ‘독재’란 표현은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경축사에서 ‘친일’과 ‘독재’란 단어를 모두 사용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재’는 썼지만 ‘친일’이란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주장했습니다. 이보다 71년 뒤에 태어난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란 명언을 남겼습니다. 20세기 영국의 E.H.카는 ‘역사는 과거의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다양하듯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도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당면한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 교과서 논란이 근본적으로 사관의 충돌이란 점에서 절충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에 했던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와 박 대통령과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년 전인 2005년 8월15일에 했던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의 주요 부분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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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 박근혜 대통령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70년 전 오늘의 벅찬 감동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건국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70년은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 70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독립을 향한 열망과 헌신적인 투쟁으로 마침내 조국의 광복을 이루어냈습니다. 순국선열들의 불굴의 의지와 애국심은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67년 전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계승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고,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의 항구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광복의 기쁨은 반쪽의 기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의 참화는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얼마 되지 않던 산업기반마저 모두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와 힘으로 새로운 도약을 일궈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지만, 황량한 모래벌판에 제철소와 조선소를 세웠고, 모진 난관을 뚫고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과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수출규모 세계 6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인구 5천만 이상 되는 국가 중에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는 소위 ‘5030 클럽’ 국가는 지구상에 여섯 나라뿐입니다. 저는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일곱 번째 ‘5030 클럽’ 국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신장된 경제력과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최초의 나라가 되었고,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들과 공유하면서, 번영을 이루려는 많은 나라들의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대한민국 성취의 역사는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 불굴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결실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불굴의 의지로 창조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써온 우리 국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금년은 광복과 함께 남북 분단 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남과 북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야 합니다. 최근 미국-쿠바 수교와 이란 핵협상 타결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사회는 변화와 협력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숙청을 강행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깨뜨리고 남북간 통합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핵개발을 지속하고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서 우리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DMZ 지뢰 도발로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습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도발과 위협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과 북, 해외의 8천만 동포 여러분, 비록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광복 70주년을 맞는 역사의 길에서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면, 희망과 기적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을 이룬 새로운 한반도는 핵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8천만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년 전 오늘, 우리는 잃어버렸던 조국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하나 된 마음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성취와 희망의 대한민국을 건설해왔습니다. 선대들의 애국심과 그 위대한 뜻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입니다. 저와 정부는 중단 없는 혁신으로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는 부강한 나라와 원칙이 바로선 투명한 나라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으로 통일시대의 문을 열어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100년의 기적’을 완성하고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이루어 세계와 지구촌의 번영을 선도하고, 문화로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대한민국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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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 노무현 대통령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해외동포 여러분, 60년 전 오늘,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로부터 60년,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희망찬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모습을 선열들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뜻 깊은 이 날을 맞아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애국선열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피와 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해마다 광복절 경축사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말하고 다짐하는 데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지난날의 어두운 이야기로 경축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역사의 과오를 돌이켜보며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후일의 경계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자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근본 원인은 당시 세계를 휩쓸었던 제국주의 질서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국주의의 파고가 거세었다 할지라도 우리 내부에 이를 이겨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더라면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 선조들이 세계정세에 어두웠다고들 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정세를 미리 내다보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대안을 내놓은 선각자들이 계셨지만 어느 대책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고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책을 세운다 해도 이를 실행할 만한 국력이 없었고 그나마 편을 갈라서 싸우느라 힘을 모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의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은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았던 지배체제와 이에 결합한 기득권체제 때문이었습니다. 지배세력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사상체계에 매몰되어 일체의 다른 사상과 제도를 배척하였고, 새로운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숨마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명분은 당당했지만 불행하게도 결론은 언제나 기득권체제를 옹호하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들 상호간에도 권력을 놓고 목숨을 건 투쟁을 일삼았습니다. 정교한 사상체계도 노골적인 권력투쟁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지배세력 스스로 분열했던 것입니다. 권력을 견제할 반대자마저 철저히 배제한 지배세력은 끝없는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도탄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삶의 뿌리가 뽑혀버린 백성들이 지배세력을 불신하고 따르지 않게 되었으니 백성과 지배세력마저 갈라져 버린 것입니다. 지배세력의 완고한 기득권과 독선적인 사상체계, 부정부패와 목숨을 건 권력투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열과 대립이 나라를 피폐하게 하고 끝내는 망국에 이르게 한 내부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크게 세 가지 분열적 요인을 안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이고, 그 둘은 정치 과정에서 생긴 분열의 구조이며, 그 셋은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과 격차로부터 생길지도 모르는 분열의 우려입니다. 나라를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 위에 단단하게 올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또다시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 분열과 갈등의 구조를 해소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역사에서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는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 그리고 독재시대의 억압과 저항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친일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분열과 갈등이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방은 되었으나 좌우 대결에 매몰되어 친일세력의 득세를 용납하였고, 그 결과로 친일세력을 단죄하기는커녕 역사의 진실조차 채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작년에는 우리 국회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고, 올해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만들어서 그동안 미루어 왔던 친일 반민족행위의 진상을 밝히고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사의 나머지 한 쪽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면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이제 정리되는 국면으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까지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들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입니다. 해방 후, 좌우의 대립과 독재·반독재간의 오랜 대결도 갈등과 대립의 문화를 남겨놓았습니다. 좌우익은 서로를 용납하기 어려운 가치체계를 가지고 테러와 학살까지 일삼았습니다. 독재정권도 도청과 감시, 체포와 투옥, 고문과 협박도 모자라서 마침내는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자연히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반독재 운동도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는 고비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을 부여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독립국가 건설을, 산업화시대에는 가난극복을 우리는 소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행했습니다. 70-80년대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역사는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과업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바로 분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의 통일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이 역사적 과업을 완수해내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읍시다. 광복 60주년을 경축하는 오늘 이 자리를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출발점으로 삼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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