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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닮은꼴 끝판왕' 교육과 국정화…과정보다는 결과, 토론보다는 주입식

[취재파일] '닮은꼴 끝판왕' 교육과 국정화…과정보다는 결과, 토론보다는 주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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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취재파일에 이어 국정화 홍보 웹툰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국정 교과서' 홍보에 나서는 부분입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

"현장 적합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2017년 3월 학교에서 쓰는 걸 목표로 국정 교과서 집필 기간을 1년여로 잡고 있습니다. 내년 연말쯤 국정 교과서 집필이 완료될 예정인데, 이 교과서를 당장 이듬해 3월부터 쓰겠다는 겁니다. 새로 교과서를 만들면 한 학기 정도 학교현장에서 사용해보는 현장검토본(실험본) 과정이 생략됩니다. 교육부가 스스로 만든 '한 학기 현장 검토' 원칙까지 무시하면서 국정 교과서를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왜 2017년일까요. 올해 정해진 '개정 교육과정'은 2018년 3월부터 교육현장에 적용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국정교과서도 개정 교육과정 속 일부입니다. 정말 양질의 교과서, 균형잡힌 교과서를 집필하고자 한다면 2018년부터 쓰겠다고 계획해도 될 겁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쓰는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 2017년부터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는 점, 수능에서 한국사 필수가 2017학년도부터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왜 2017년일까요. 2017년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입니다.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2017년'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장적합성 검토, 감수 과정 등을 모두 건너뛰고, 교과서 제작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서까지 2017년에 '반드시' 결과물을 내 놓겠다는 건, '과정보다는 결과'라는 우리 교육의 단면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를 위한 결과물인 건지는, 안타깝게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홍보를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 홍보용 공식 홈페이지(http://www.moe.go.kr/history/index.jsp)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 좀 이상합니다. 보통 홈페이지에는 응당 있는 '게시판' 같은 의견 수렴 창구가 없습니다. 교육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만 담겨 있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어떤 공간도 이 홈페이지엔 없습니다.
국정 홍보 홈페이지 메인
국정 홍보 홈페이지 질의응답

다양한 의견수렴 공간으로서 이 홈페이지 만큼 적당한 공간도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12일 '검인정 교과서 구분고시', 즉 국정교과서 행정예고를 하면서 11월2일까지 교육부장관에게 우편이나 팩스로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공고했습니다. 정부의 행정예고 절차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정부의 행정예고나 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별도 홍보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서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왕 이렇게 홍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소통 공간도 있는게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모습일 겁니다. 정부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국민의 얘기는 쓸 수 없는 홍보 홈페이지, 정부의 주입식 홍보 역시 우리의 주입식 교육 문제와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국정홍보 홈페이지 홍보자료

또 하나, 국정 교과서 홈페이지에 보면 다양한 형식의 홍보 자료가 있습니다. 이미 문제가 됐던 '유관순 동영상'을 포함해 홍보 영상에 카드뉴스, 웹툰, 포스터, 리플렛 등이 탑재돼 있는데요. 교육부에 문의한 결과, 이런 홍보 자료들을 다 외주를 줬다고 합니다. 동영상 업체, 웹툰 업체 등에 일감을 맡겼다는 건데요. 업체 이름과 제작비용 등은 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정부는 국정화 발표 다음날 예비비 44억 원을 역사 교과서 개발비로 교육부에 내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교재 개발비 명목인 44억원 중 적어도 20억원 이상이 교재 개발이 아닌 대국민 홍보비라는 의혹이 있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서는 "교육부가 12일 행정예고, 13일 예비비 편성의결, 14일 광고의뢰를 했으며, 교육부가 이번에 의뢰한 신문 광고비 5억 175만원은 2015년 교육부 광고비 2억 2천만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라고 밝혔습니다. 차후 예비비 44억원 사용내역도 반드시 공개되어야 할 겁니다.

홍보 방식의 문제 하나 더 지적하겠습니다. 교육부는 해당 웹툰을 교육부 공식 페이스북에 지난달 30일 금요일 밤 11시20분에 올렸습니다. 이 시간이면 신문들은 대부분 토요일자 조간 작업을 마친 시간입니다. 혹시나 비판 기사를 쓰고 싶어도 토요일자 지면에 기사가 못 나가는 시간대라는 겁니다. 또 토요일엔 많은 기자들이 휴무이고 일요일에도 신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부기관이나 사정기관, 기업 등이 '껄끄럽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자료'는 금요일에 배포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주말 이틀 정도는 비판 언론의 뭇매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네티즌들이 웹툰을 보고 엄청난 반대 댓글을 달았습니다만,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 홍보를 위해 만든 공식 플랫폼인 홈페이지에는 몇날 몇시에 올렸는지 알 수 없고, 댓글도 달 수 없는 상태로 웹툰을 올려놨습니다. 해당 홈페이지의 존재 목적이 많은 국민들이 보라는 건지, 어느 누군가만 보라는 전시용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으로 전시만 하고 소통 창구는 없는 국정교과서 홈페이지, 주입식 홍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입니다.

오늘(2일)로 국정 교과서 행정예고가 종료됩니다. 정부는 곧바로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할 예정입니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는 이제 현실이 되는 겁니다. 우리 현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근현대사 100여년 속에, 30여년의 차이로 부녀가 대통령이 된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가장 큰 시간인 이 시간을 이제는 국가가 관할하는 시대가 되는 겁니다. 

국정화 확정고시는 형식상으로는 '교육부 장관 고시', 즉 교과서의 국정, 검인정 등은 장관 결정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번 국정화 결정을 장관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장관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재량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는 2017년 3월 교육현장에 배포되는 게 확실한 상황이 됐습니다. 과정보다는 결과, 토론 보다는 주입식으로 추진된 국정 교과서에서 '역사는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힘의 논리까지 우리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조선시대 사관들이 기록했던 조선왕조실록은 당대 왕이 살아생전 볼 수 없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사관의 글을 보겠다고 노발대발할 때 한 사관이 했던 말로 취재파일 마치겠습니다.

"후대의 본이 되셔야 할 창업군주가 당대의 역사를 열람하시면 후대 군왕들이 이를 구실 삼아 사초를 보고 뜯어고치는 일이 흔하게 될 겁니다. 어느 사관이 무슨 역사를 기록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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