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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 떠나고 싶다?"…교육부의 非교육적 홍보, '웹툰 유감'

[취재파일] "한국 떠나고 싶다?"…교육부의 非교육적 홍보, '웹툰 유감'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자료들은 나라의 '국격'을 짐작가능케 하는 중요한 '메타포'이자, 시대의 분위기와 위정자들의 인식을 담은 '사료'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기조를 설명하고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대국민 홍보자료는 당대에 바로 공개되는 '사료'인만큼, 어떤 정부자료보다도 사려깊고 진중하게 만들어야 할 겁니다. 



지난 주말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입니다. 웹툰을 보신 시청자, 취재파일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해당 웹툰은 총 11장입니다. 클립 한장 한장 살펴보겠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
주체사상과 한국전쟁의 원인 두 가지를 서술한 부분의 출처에 대해 교육부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교육부는 주체사상 부분은 금성출판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013년 검정본, 6.25의 원인 부분은 미래엔에서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010년 검정본에서 발췌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성교과서 406-407쪽 사진

현재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금성 한국사 교과서 2013년 검정본입니다. 북한 관련 대단원에서 '북한, 세습 체제를 구축하다'라는 소단원 중 407쪽 하단 박스에 주체사상 관련 서술이 있습니다. 문장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금성교과서 407쪽 하단 주체사상 박스
(1) "북한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고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략) (2)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1)은 '사실'에 대한 서술이고 (2)는 사실에 대한 '해석'입니다. 역사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지요. 사실과 해석이 모두 들어가 있는 참고 박스글인 겁니다. 그런데 (1)의 문장이 웹툰에서 주장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로 이어진다는 교육부의 논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래엔-북한의 남침
미래엔-북한 1인 독재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 2013년 검정본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침을 해 왔다." 이 문장 보이십니까. 현재 교육현장에서 쓰고 있는 8종의 검정교과서 어디에도 한국전쟁의 책임을 남북 모두에게서 찾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웹툰에 있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이란 표현 역시도 당연히 어디에도 없겠지요.

교육부는 미래엔 2010년 검정본에 '남한에도 원인이 있다'는 누군가의 일기 내용을 인용했다고 해명했습니다만, 정확한 전후 맥락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해당 교과서 역시 교육부가 검정을 해서 발행했고, 수정명령이 있었고, 그래서 2013년 검정본에서는 해당 서술 부분 자체도 빠졌습니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찾을 수 없는 내용이란 얘깁니다.

검정 체제에서 '교과서 집필기준'의 구속력은 막강합니다. 교육부가 제시한 교과서 집필기준은 대단원-소단원-하단박스-탐구과제 등 아주 세밀하고 자세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이를 벗어난 교과서를 만들기도 어렵고, 검정 통과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금성 케이스처럼 앞뒤 전후서술을 뚝 짤라서 발췌하거나, 미래엔처럼 교육현장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대국민 홍보 자료를 만들었다는 건, 국정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
"헐,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다니.."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싫다..."
"부모님 세대들도 한심해!"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떠나고 싶어. 다 나쁘고 다 미워." 

웹툰을 누가 만든 건지 교육부에 물어봤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용은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에서 만들었고 업체(기획사)에서 만화를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업체가 어딘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웹툰 두 컷을 보면서 '국격'이란 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헬조선'이란 말도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수준과 젊은 세대의 역사관을 이렇게 밖에 보지 못하는 '국격'이 아쉽고, 청년세대의 절망을 역사교과서 탓으로 돌리는 '국격'이 안타깝습니다. 

정부 홍보자료를 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교육부 공식 페이스북 '웹툰' 포스팅 밑에 있는 시민 댓글 몇개만 보시겠습니다. (11월 1일 15시 현재 3,500여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모두 실명 댓글이지만, 저는 내용만 발췌하겠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검정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웠지만 단 한번도 저의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이 부끄럽다느니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습니다. 제가 부끄럽고 화가 났던건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고 권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의 잣대나 현 권력층이었습니다."

"헬조선의 원인을 단순히 교과서에서 찾다니.. 기껏 국정화 추진 근거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이겁니까? 한심하네요. 왜 우리나라가 헬조선인지 더 잘 알겠습니다. 교과서를 보고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구요? 진짜 부끄러운 역사, 도대체 누가 만들고 계시는지요?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제일 부끄럽습니다. 행정예고 기간이 이런 만화 뿌리는 기간입니까?"

"이런짓거리 하라고 세금 갖다바치는거 아닙니다. 자기들의 친일독재 역사를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포장하려고 하는사람, 만화 그리라고 시킨사람, 따라 그린사람, 그걸 또 자랑스레 인터넷에 올리는사람 다들 양심팔아서 혈세로 밥벌어먹고 살아가는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제. 역사를 바꿀생각을 하지말고 제발 '해야 하는' 일들을 하세요."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교과서 홍보 웹툰

"당신의 자녀는 어느 쪽이어야 할까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전환은 '교육 철학'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치 논리' 때문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바람직한 미래세대를 길러내야 하는 그 막중한 사명감까진 기대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교육부가 전면에 나서 국민들을 '네편과 내편', '좌우'로 편가르기에 앞장서는 행태는 '非교육의 극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자의 어쭙잖은 말 대신, 교육부 페이스북에 달린 네티즌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과서들 다 교육부에서 검정해준 교과서 아닌가요? 누가 보면 북한에서 가져온 교과서인 줄 알겠습니다. 역사교과서가 아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고요? 이렇게 자기 얼굴에 침 뱉는 만화나 만들어 올리면서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월급으로 받는 게 진짜 부끄러운 겁니다. 왜 삽질은 교육부가 하는데 부끄러움은 내 몫인지, 그 대가는 아이들이 치러야 하는지..."

교육부가 아무리 행정부의 수반인 청와대의 '국정철학'(이라 쓰고 '눈치'라고 읽겠습니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정철학에 우선하는 교육부의 제1 책무는 교육의 백년대계일 것입니다. 정부는 5년이지만, 국민은 영원합니다. 국정화 논리의 민낯이 드러난 웹툰, '국정화 유감'인 이유입니다.         

▶ '닮은꼴 끝판왕' 교육과 국정화…과정보다는 결과, 토론보다는 주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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