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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훈숙 단장이 소개하는 '발레 감상법'

[취재파일] 문훈숙 단장이 소개하는 '발레 감상법'
10월의 마지막 주 유니버설 발레단이 ‘라 바야데르(La Bayadère)’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출연 인원 130여 명, 동원 의상 400여 벌, 무대 장치도 무척이나 화려하고 규모가 커서, ‘블록버스터’ 발레로도 불리는 작품입니다. 힌두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젊은 전사 솔로르의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다뤘는데, 줄거리가 매우 극적이고 춤과 무대는 상당히 이국적입니다. (서양인 기준으로 이국적인 작품이지만, 유럽을 무대로 한 다른 많은 발레 작품에 익숙한 우리 시각에서도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질 만한 작품입니다.)
 
줄거리가 극적이라지만, 발레 공연장을 자주 찾는 관객이 아니라면 사실 공연을 보며 그 ‘극적인 재미’를 충분히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줄거리를 대충 파악한 뒤 공연을 보면서는 그 흐름을 떠올리며 춤 동작의 아름다움 정도만 감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렵고 지루하다’는 푸념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번 취재파일에선 유니버설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이 말하는 발레 감상의 ‘꿀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주 라 바야데르 공연을 앞두고 SBS 팟캐스트 녹음에 참여했을 때 이야기하신 내용을 발췌해 다듬은 건데, 발레 초보 관객 분들은 공연을 보러 가기에 앞서 일독하시면 아마 감상의 재미가 배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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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발레단 '라 바야데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레에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사가 있습니다. 모든 대사를 손동작인 ‘발레 팬터마임’으로 표현하는데, 기본적인 동작만 몇 가지 알고 있어도 쉽게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어요. 왜냐면 쓰여지는 팬터마임 동작이 정해져 있거든요.
 
사랑하면 가슴이 설레니까 두 손을 가슴 위에 포개면 ‘사랑한다’, 결혼 반지가 끼워지는 손가락을 가리키면 ‘결혼한다’, 두 손을 위로 올려 두세 번 돌려서 내리면 ‘춤추자’, 한 손 혹은 두 손으로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거절’, 손바닥을 쫙 펴서 손을 위로 올렸다 주먹을 쥐고 내리면 ‘죽음’을 뜻하는 식입니다. 이런 동작 몇 가지만 알면, 공연을 볼 때 ‘저건 대사 동작이구나’, ‘저건 순수한 춤 동작이구나’ 구분할 수 있고 그러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춤 동작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발레를 몸의 언어라고 볼 때, 대부분의 표현은 상체에서 나오므로 우선 상체의 변화를 주목해 봐야 합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지젤’의 주인공을 예로 살펴보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16살의 어린 공주이므로 희망적인 미래가 앞에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시선도 손끝도 위로 향합니다.

반면 지젤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팔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축 처진 듯 표현합니다. 마치 손끝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말이죠. ‘백조의 호수’에서는 두 팔이 날개이기 때문에 가슴을 활처럼 앞으로 내밀고 팔은 등 뒤에서 움직입니다. 이렇듯 상체를 보면 그 작품의 스타일을 알 수 있습니다.
 
상체 동작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는 다리 동작을 보면 됩니다. 다리도 느리게 올릴 수 있고 한번에 빠르게 차 올릴 수도 있고 스타카토 느낌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다리도 표현력을 가진 거죠.
다리 동작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몸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선을 감상하십시오. 무용수 혼자서 만드는 아름다운 선, 두 명의 무용수가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선, 32명의 무용수들이 만드는 군무의 아름다운 선, 그런 것들을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면 마지막으로 그날 출연하는 주요 무용수들의 연기력과 음악성을 감상하시면 됩니다. 음악성은 단순히 박자에 동작을 맞추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김연아 선수와 아사마 마오 선수의 연기를 떠올려 보시죠. 두 선수는 체격도, 기술 수준도 비슷하지만, 왠지 모르게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보면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죠. 제가 볼 때는 그 차이를 만드는 게 음악성입니다.
 
소리가 파동이듯이 음악도 파동입니다. 음악의 파동이 몸의 파동과 주파수가 맞으면 감동이 10배로 커지는 거죠. 마치 무용수의 몸이 스피커가 된 것처럼, 무용수의 몸에서 음악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일 때 음악과 춤이 완전히 일치를 하게 되는 겁니다. 강수진 단장이 그걸 가지고 있어요. 김연아 선수도 그걸 가지고 있고요. 그건 타고 나는 건데, 음악에 몸을 맞추는 것과 음악 자체가 되는 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요.
다른 모든 장르의 작품이 그렇듯이, 발레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알고 보면, 재미있게 볼 가능성,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집니다. 화려한 발레 공연들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발레 공연을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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