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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화장실 가게 해 주세요. 제발."



시험, 맞선, 면접. 

중요한 일이 시작됐을 때 아랫배가 슬슬 아파지는 경험, 다들 있을 겁니다. 참고 또 참아보지만 더는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시점 앞에서 느끼는 좌절감…그런데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시험관이 화장실에 가는 걸 막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제로 공무원 시험장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난 10월, 전기기사 국가기술자격시험. 응시자 박 모 씨(54, 남성)는 시험 도중 갑자기 용변이 급해졌습니다. 감독관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감독관은 화장실에 가면 재입실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풀 문제가 남아 있던 박 씨는 차마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시험장 안에서라도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감독관은 쓰레기통이 놓인 시험장 뒤편에서 소변 봉투에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공들여 준비한 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박 씨, 울며 겨자 먹기로 소변 봉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경험은 박 씨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7일, 경기도 공개경쟁 임명 필기시험에 응시한 김 모 씨(32, 남성)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응시자 전원이 남자였던 박 씨의 경우와 달리, 김 씨의 시험장에는 남녀 응시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김 씨 / 소변 봉투 경험자]
" 여성 응시자는 물론 많은 사람 앞에서 소변을 보라고 해서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시험 시작 30분 전부터 화장실 이용을 제한해, 시험시간 내내 소변을 참을 수밖에 없어 곤혹스러웠다.”

전기기사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했던 박 씨는 화장실 문제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용변 문제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하는 생리적 욕구이다. 화장실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해 시험장 뒤편에서 용변을 보도록 한 것은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인격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는 시험 도중에도 감독관이 동행하면 화장실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국가 공무원 시험에서는 시험 도중 화장실 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감독관 근무요령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화장실 이용은 금지돼 있고, 만약 배탈이나 설사가 나서 급하게 부득이 이용해야 하면 그 시점까지 작성한 답안지만 제출하고 나가야 합니다. 시험장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소변이 급할 때는 시험장 안에서 소변 봉투를 이용하도록 하는데 여성은 우산 등으로 가림막을 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정말 꼭 이래야만 할까요?

인사혁신처는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금지와 시험장 내 소변 봉투 사용은 시험의 공정성을 위한 조치라며 당장은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는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장실 사용이 허가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생리적 권리'는 보장해주면서 공정성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무원 시험 응시자도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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