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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에 싸울 사람이 돼라" 故김준엽 선생의 뭉클한 가르침

"현실에 살지말고 역사에 살아라.정의와 진리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

"부정의에 싸울 사람이 돼라" 故김준엽 선생의 뭉클한 가르침
'현실에 살지말고 역사에 살아라.정의와 진리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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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월 25일 오전 10시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전두환 정권과 맞서던 총장이 강제로 물러나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졸업식장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총장의 마지막 말. “사회의 부정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돼라”

물러나는 총장을 뒤따르던 학생들은 눈물로 총장사퇴 결사반대를 외쳤습니다. 교수, 교직원, 기숙사 수위까지 가세한 사상 최초의 총장 사퇴반대 시위는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한 달간 계속됐습니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강제해직 된 교수들을 복직시켰고 민주화 투쟁을 벌이다 끌려간 학생들의 강제 처벌을 거부하며 학교에 버젓이 상주해 온 정보 기관원들을 내쫓아낸 총장은 퇴임식조차 갖지 못한 채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영원한 총장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일제에 맞선 광복군이자 독재에 맞선 참스승이었습니다.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부딪쳐 온 김준엽 그 이름은 한국현대사의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조선의 멸망과 일본의 근대화 성공을 배우기 위해 게이오대학 동양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에 총알받이로 강제 징집돼 중국전선에 배치됐습니다. 광복군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학병 탈출 1호 김준엽은 뒤이어 일본군을 탈출한 장준하와 함께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충칭까지 6천리 길을 걸어가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절대로 이런 고생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김준엽은 그곳에서 장준하와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CIA의 전신인 미국 첩보국 OSS로부터 특수 훈련을 받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기쁨도 잠시, 그는 자주 독립을 이루지 못한 조국의 앞날이 걱정이었습니다. “전쟁 중 우리가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해질 것이다”

중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광복군 시절 교육계에 투신하겠다던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최연소 고려대 교수로 임명됐고 장준하와 <사상계>를 이끌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식민통치사의 전환에 따라 독립운동의 시기를 구획하는 타율적 사관을 버리고 민족저항의 주체적 사관을 확립해야 한다. 또 성공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실패했으면서도 공헌이 큰 운동에도 관심을 두어야하며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웅주의사관은 불식시켜야 한다" <한국독립운동사의 재조명 1989>

1982년 7월, 오랜 고민 끝에 총장직을 수락한 그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나는 결코 비굴한 행동을 취하면서까지 총장 자리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에 아부하는 따위의 행동은 일체 배제하겠다.”

그는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학교에 진을 치고 앉아 온갖 간섭과 협박, 감시를 일삼던 정보ㆍ수사 기관원들을 쫓아냈습니다. 툭하면 총장을 불러다가 ‘시위 학생을 제적하라’고 압박하는 정부에‘학칙에 의거해 처리하겠다’며 버텼습니다. 
“정부의 압력에 대해서는 총장과 교수들이 최선을 다해 막을테니 여러분도 학교의 명예를 지켜 달라"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하던 그는 1984년 11월, 학생들의 민정당 농성사건으로 충돌했습니다. 민정당사로 침투한 전투경찰은 강제로 학생들을 연행했습니다. 나흘 뒤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은 총장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권이혁 문교부 장관 / 연행된 학생 111명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일 아침 9시 반까지 제적시켜라! 따르지 않는 총장은 반정부로 간주하겠다!"

"김준엽 고려대 총장 / 그렇게는 못 하겠다. 법적으로 일하겠다는 것이 반정부라면 우리 정부는 무슨 정부냐! 학생들을 제적시키는 것은 사회적으로 사형을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 제자들의 죽음 앞에서 밥이 목에 넘어갑니까!

그날 이후 정부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대했습니다. 1985년 문교부 장관은 기어코 그에게 사직을 강요합니다. 그는 졸업식을 끝으로 나가겠다면서 조건을 걸었고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조건은 학생 25명의 제적을 취소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야인이 된 그에게 정치권의 제안이 잇따랐습니다. 이승만 정권부터 김대중 정권까지 정부 요직을 12번이나 제안받았지만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벼슬은 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은 단호했습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총리 제안에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되는 전두환씨에게 총리로서 내 머리가 100개 있어도 고개를 숙일 수 없다. 나는 교육자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있겠는가.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하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 좀 건방진 말이긴 하나,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줘야겠다. 나는 지난 대선 때 야당 후보자를 찍었다."

김영삼 정부에 건의해 옛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일제잔재를 청산하는데 앞장섰고,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임시정부 청사의 복원과 윤봉길 의사기념비 확대 사업에 나섰습니다. 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대한민국 헌법에 새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광복 투쟁에서부터 민주화까지 지조와 절개, 소신과 신념으로 진정한 학자이자 야인으로 살아온 김준엽 선생의 장정은 2011년, 91세를 일기로 막을 내렸습니다. 

“긴 역사를 볼 때 진리와 정의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 진실한 역사를 강조했던 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김정배 현 국사편찬위원장입니다. 통합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애제자의 집념을 하늘에 계신 스승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실까요…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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