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아버지를 참다못한 고등학생 아들이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아들의 재판을 실제 가정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또래 학생들이 맡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강서문화원에서는 대안학교인 성지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정폭력 사건을 가정한 모의 형사재판을 열었다.
이 학교는 1997년 이후 꾸준히 학생 모의재판을 통해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청소년 성매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왔다.
이날 역할극 형식으로 재판을 꾸린 학생 중 일부는 과거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학교 3학년인 피고인 이기훈(박시현·2학년)은 수년간 어머니를 손찌검해 온 아버지를 깨진 유리병으로 찔러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로 모의법정에 섰다.
이날 재판은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참지 못하고 부친을 살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됐다.
학생들은 웃음기 없는 진지한 모습으로 실제 법정을 방불케 하는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검사(장승원·2학년)는 "아들이 아버지를 찔러 죽이는 행위는 너무나 비윤리적이고 비합법적"이라면서 "피고인이 직접 폭력을 당하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에 변호인(김희진·2학년)은 "사춘기 청소년에게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가정폭력"이라면서 "어머니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려 한 피고인에게 정당방위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이군은 최후진술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막대기로 심하게 때리다가 술병까지 집어던지기에 순간 이성을 잃었다"면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등"이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재판장(김명훈·2학년)은 국민참여재판 방식을 빌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게 의견을 물었다.
5명의 배심원단 중 4명이 존속살인 유죄, 1명은 무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이군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50시간을 명령했다.
재판장은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사회구조상 가정폭력은 단순 폭행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범죄"라면서 "피고인 목숨이 직접 위협당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정당방위는 인정하지 않지만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성지고 국어 교사 김유경씨는 "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그동안 숨겨왔던 상처를 바깥으로 드러내면서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 상처를 안고 연극에 참여한 한 학생은 "남들 앞에 상처를 드러내면 여전히 아프지만, 그렇다고 숨기기만 하면 더 스트레스가 돼 연극을 하게 됐다"면서 "연극을 준비하면서 나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이 부친 살해한 또래 재판한다면
대안학교 성지중고 학생들 모의 형사재판 열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