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기뻐할 일만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비뚤어지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축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 여수 스타테크㈜ 박원균(55) 대표이사는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꼽힙니다.
박 대표가 저축의 날 훈장을 받게 된 것은 그만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농지가 한 평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16살 때 명절에 내려온 귀성버스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 후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형의 고등학교 진학 권유에 "학교 다니며 세월을 보낼 바라면 차라지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박 대표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철공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는 당시 첫 월급으로 4천500원을 받아 부모님께 조끼와 내의를 사서 선물한 것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계기가 됐다며 지금도 눈시울을 붉힌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뒤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는 내의 선물을 받고서 아들의 고생을 생각하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박 대표가 서울로 올라온 지 25일 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박 대표는 "지금도 나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때부터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하늘로 가셨다고 생각해서 철이 일찍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철공소에서 근무하는 3년 동안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습니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통장을 만들다 보니 3년 근무 뒤에 10개가 넘는 통장에 무려 1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방황을 하기도 하고 가끔 내 이익을 위해 거짓말이나 나쁜 짓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기뻐할 일만 하자'고 생각하며 옳은 길을 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선박 관련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여수지사를 만들어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과 가까운 여수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93년까지 월급 생활을 하면서도 월급의 60% 이상을 끊임없이 모았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박 대표는 친구의 도움으로 회사를 인수해 그때부터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박 대표는 "사업에 매달리다 보니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어느 날 고등학교 교복을 입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는 것을 깨달아 교육청으로 달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교육청에서 교복이 없는 학생 10명을 선정해 교복을 선물하고 나서 그의 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에게는 연간 30억∼4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일구는 동안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잊지 않고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철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매년 2천만 원이 넘는 기부를 하는 등 사회봉사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자신이 몸담은 봉사활동 단체 회원들이 십시일반하고 자신도 사재를 출연해 '재단법인 진남장학회'를 설립해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일에 나서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기부에는 마약보다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내 것을 나눠줄 때에 내가 느끼는 행복이 제일 크다"며 "앞으로도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찢어진 가난' 딛고 자수성가…기부천사 '저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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