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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 애틋한 느낌 "얼마면 되겠니?"

"사랑도 부모도 돈 받고 빌려드립니다"

45도 얼짱 각도로 내뱉는 원빈의 명대사. "사랑 웃기지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하얀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대비되는 앳된 얼굴의 송혜교는 두 눈 가득 눈물 맺힌 채로 답한다.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이미 추억의 고전이 된 드라마 '가을동화'의 이 장면은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울렸다 웃겼다,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습니다. 

불치병 소녀를 향한 재벌 2세의 짝사랑이라는 가슴 저미는 설정과 원빈, 송혜교의 '리즈시절' 눈부신 외모가 감동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감동했던 밑바탕에는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을 텐데…"라는 공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투정부리듯 내뱉는 말 "얼마면 돼?"라는 말 속에 함축된 애틋함, 안타까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 등을 시청자들이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에 감동은 더욱 컸습니다.

가을동화 이후 15년이 흐른 요즘, 눈부신 경제 발전 덕분인지 너도 나도 원빈이 됐습니다. 너무도 쉽게 내뱉는 말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 이제 사랑도 애인도 돈으로 사고 있습니다. 비록 그 감정이 진심은 아니어도 의뢰하는 사람이 진심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역할에 충실한 '애인 대행' 서비스 때문입니다. 3시간에 18만 원이면 송혜교 만큼은 아니더라도 눈부신 외모의 여성과 애틋한 사랑놀이가 가능합니다.

'애인 대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성매매'부터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애인 대행은 성매매와는 거리가 먼 '진짜 애인대행' 서비스라고 합니다.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드라이브하고 마치 연인끼리 느끼는 풋풋한 설렘을 그대로 재연해준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무리 예쁘고 어리다고 한들 그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생면부지의 여성과 밥 먹고, 영화 보고 데이트를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밥값과 영화비용도 고스란히 부담하면서 말이죠.

애인 대행 서비스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취재진은 실제로 애인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봤습니다. 동문회에 함께 갈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면서 지적이고 깔끔한 외모의 여성을 업체에 의뢰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약속 장소에는 22살의 앳된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대학 휴학 중 호기심에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이 여성은 이 일을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고, 3명의 남성을 만나봤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여성은 3명의 남성들에 대해 "진짜 여자친구인 것처럼 같이 놀고 싶어서 의뢰한 분도 있었어요. 또 너무 외로워서 의뢰했다는 분, 애인이랑 헤어진 지 한 달 됐는데 너무 힘들다며 계속 울기만 했던 분도 계시고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두 저마다 각자 사연이 있지만 애인 역할을 해줄 여성이 필요했고, 이 여성을 통해 충분히 '애틋한' 느낌을 경험한 듯 보였습니다. 애인 대행 서비스를 통해 감성적 만족을 얻는다는 겁니다.
 
이런 심리에 대해 연세대학교 황상민 교수는 "진짜 연애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 나와 감정적인 공유를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고 일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일 수 있고, 실제 애인이 아니더라도 '그와 동일한 역할을 해준다' 라는 인식을 통해서 충분히 내가 애인과 연애를 하는 그 경험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생면부지의 여성과 비싼 돈을 들여 같이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하는 이유가 이제 어느 정도 설명된 듯합니다.

그런데, 돈을 받고 이렇게 역할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는 '애인 대행' 서비스가 끝이 아닙니다. 돈만 주면 어떤 역할이든 해주고, 무엇이든 대신 해주는 서비스로 이른바 '대행 아르바이트'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연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질투심을 유발해 준다는 '질투심 유발 대행' 아르바이트도 등장했습니다. 취재진이 오래된 연인의 여성 입장에서 남자 친구의 질투심을 유발해달라며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하자 키 188센티미터의 '모델급 훈남'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 '훈남'은 실제로 여성 취재진의 마음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열심히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연기에 몰입했습니다. 총 비용 20 만원이면 이런 '훈남'을 통해 질투심 유발도 가능하고 내 남자친구에게 '위기감'을 선사하며 여성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겁니다.

이 뿐만 아니라 소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을 위한 '대신 항의해주기' 서비스, 빚 독촉 전화를 대신 받아서 입금 날짜를 미뤄주는 '빚 독촉 전화 대신 받기' 서비스 등도 있습니다. 심지어 상견례 자리에 대신 나가고, 결혼식장에도 대신 앉아주는 부모 대행 서비스도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해보고 싶은 연애의 애틋한 경험도 돈으로 살 수 있고, 내가 하기 싫은 불편한 경험과 일은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필요하면 빌려서 연기를 시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업의 영역을 개척한 '창조 경제'의 한 현상으로 봐야할까요? 아니면 감정도 역할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 안타까운 현실일까요? 왠지 후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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