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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TK 검찰총장론' 유감

모레(28일) 검찰총장추천위원회가 열립니다. 추천위에서 복수의 검찰총장 후보를 결정해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면 이 중 한 명을 장관이 추려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입니다. 서초동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차기 검찰총장은 누가 될 것인가? 하마평에 오르는 분들이 여러명이고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차기 검찰총장은 TK 출신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일단 '용호상박'이라고 불리는 가장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자 2명은 김수남 대검 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입니다. 엘리트 검사와 형사부 출신의 평범한 검사의 대결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만 정치적인 레토릭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검 차장이든 서울중앙지검장이든 대한민국 검사 2천 명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검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김수남 대검 차장(좌)·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우)

두 후보 모두 TK 출신이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김수남 대검차장은 부친이 영남대 총장 출신으로 이른바 뿌리깊은 영남계 인맥을 자랑하고 있고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의 최대강점은 역시 '대구고'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박성재 지검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언급해 화제가 됐던 바로 그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야당 중진 의원이 박근혜 정부에서 특정 고교 출신들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며 최 부총리의 출신 고등학교인 '대구고 프리미엄 의혹'을 지적했었죠.

최 부총리의 답이 걸작입니다.
"서울고, 경복고, 경기고 등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고위직에) 앉아있다"
"대구고 졸업생만 5만~6만명에 이른다. 그런거 다 하더라도 (고위직에 임명돼 있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된다."

표면적인 뜻은 "논리적으로 비약하지 말아달라. 자신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는 항변의 뜻으로 보입니다만 이른바 잘나가고 더 잘나갔던 특정 고등학교 출신들이 더 많은데 왜 대구고만 문제삼느냐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최근 관가에서 화제가 됐던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자를 비롯해 합참의장, 국세청장까지 권력기관의 '요직' 마다 대구고 출신이 장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질문입니다만 최 부총리가 부인하고 있으니 할 말은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인 건 분명합니다.

대구고 얘기가 길었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특정 고등학교 얘기는 아닙니다. 궁금한 건 박근혜 정부에서 대구고로 상징되는 이른바 'TK 인맥'의 요직 독점 현상이 왜 벌어지는가 입니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그럼 김수남 대검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밖에 없느냐? 이득홍 서울고검장도 있고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도 다크호스로 거론됩니다만 역시 TK입니다.

이들이 비단 TK출신이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학맥과 인맥 덕을 봤다고 해도 검사장까지 그리고 검찰총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장수들이라면 내부의 신망은 물론 능력에 대한 검증을 수십년동안 받아온 믿을만한 후보들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문제의식의 본질은 왜 이들이 TK이기 때문에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느냐는 것입니다.

특정 지역 출신들이 권력기관장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는 비단 박근혜 정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광주고 출신의 김태정 총장이, 전남 영암 출신의 신승남 총장이 있었습니다. 권력기관장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들의 출신지역이 정부의 전통적인 지지기반과 맞닿아 있더라는 겁니다.

차기 검찰총장의 수식어로 사용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검찰의 수장'

위정자들이 집권 말기에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은 바로 '레임덕' 입니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의 권력과 영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국정운영 동력의 상실될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후년 또는 내년에 대통령은 무조건 바뀌고 정권이 교체될수도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다음정부에서 기관장을 노리는 중간 간부급들 사이에서는 현정부와 거리두기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바로 레임덕의 본질입니다. 이른바 빅4로 불리는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국세청장, 국정원장 같은 권력기관장을 '우리 사람'으로 앉혀서 군기(?)를 잡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원심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가 TK 출신들이 거론되는 걸 보면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런 레임덕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집권 3년차 후반, 임기 반환점을 돈 이 시점까지도 50%가 넘는 역대급 국정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 말입니다.

어느 정부나 위기는 있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집권초기 탄핵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도 있었고 광우병 쇠고기 사태로 지지세력의 한 축을 잃은 절름발이 상태로 4년을 버티기도 했습니다. 두 정부 모두 지지율 20%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코드인사 논란과 영포라인이 득세한다는 비판이 집권 5년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공고한 지지기반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청와대 문건 사태로 수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최근 불거진 국정 교과서 추진 논란으로 시국이 다시 요동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합니다. 기업의 오너에게 회사 지분이 권력이라면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지지율이 국정 운영 동력의 지분입니다.  커다란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도 무방해 보이는 정부라는 얘기입니다.

차기 검찰총장에게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오명일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조직 내부에서 수십 년 동안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들입니다. TK 출신이기 때문에 검찰총장이 됐다는 소문들은 현 정부와 지지기반이 일치해야 검찰총장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내부의 확신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검찰의 미래를 위해서도 온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장래가 창창한 검사들이 출신 지역이 TK가 아니라고 해서 좌절하고 호남이라고 정권교체를 바래서야 되겠습니까?

박근혜 정부의 전통적 지지기반은 TK지만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국민들은 지역을 망라하고 대한민국 각 지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50% 지지율이 공고하게 유지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정부 만큼은 특정 지역 출신만이 권력기관장에 오를 수 있다는 등식에서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검찰총장 후보자들의 출신 지역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와 철학, 사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검찰 미래의 청사진을 구현할 수 있는 교과서 같지만 가장 중요한 수장의 자격을 이제는 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권력과 고향이 같다고 해서 '우리 사람'으로 규정하는 잘못된 편가르기 문화를 이번 정부에서 만큼은 끊고 가야하지 않을까요? 검찰총장 후보자들을 'TK출신'이라는 선민의식에서 자유롭게 놓아줄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는 21세기입니다. 서울 출신이면 어떻고 충청도 출신, 강원도 출신 검찰총장은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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