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시가 이 한신대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이 '사람과 방재(防災) 미래센터'입니다. 방재 교육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진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 일부를 재현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최근 동남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신대지진의 기억이, 일종의 '마이너스 유산'이 뜨거운 '관광명소'로 재탄생한 겁니다.
재해의 기록을 카메라에 담아 SNS에 올리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걸 보고 또 일본을 찾는 사람들이 나오겠지요. 떠올리기조차 싫은 '재해의 기억'이, 외국인들에게 일본의 긍정적인 면을 각인시키는 '명소'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물론 최근 일본 관광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엔화 약세가 결정적인 배경입니다. 3~4년 전보다 1/3 정도 싸졌으니 관광객이 느는 건 당연합니다. 특히 '쇼핑'이 중심인 중국 관광객들을,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엔화 가치가 떨어져 그만큼 일본에서의 쇼핑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밥솥을 비롯한 주방용품, 화장품이나 각종 고가품을 싹쓸이하는 중국 관광객들 때문에 '폭탄쇼핑(爆買い)'이라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니까요.
도쿄 유명 관광지인 긴자에 가면, 같은 색깔의 대형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쇼핑한 상품을 손쉽게 담아가기 위해, 단체로 일본 현지에서 가방을 장만한 겁니다. 대형 가방 대여섯 개를 한꺼번에 끌고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도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341만 명이었는데, 올해 10월 9일 현재 1,500만 명을 넘었습니다. 2년 전에 동남아, 올해부터 중국 관광객에 대해 비자발급 요건을 완화한 것이 엔화 약세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일본 관광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화 약세만으로 일본 관광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고베 방재센터의 경우처럼, 일본 자체를 관광 상품화하는 일본의 전략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엔화 약세라는 조건, 비자 완화같은 정책적 지원에 날개를 더한 모양샙니다.
단순히 친절하다. 바가지가 없고 정직하다. 뭐 이런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차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나 침략역사 같은 진정한 마이너스 유산은 필사적으로 부정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일본 자체를 상품화'하는데 정부-언론-상인-시민 등이 똘똘 뭉쳤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유명 영화배우가 일본을 찾았다면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이 반드시 일본 문화체험 이벤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유명 영화배우의 경험을 SNS를 통한 '일본 홍보'로 연결하는 식입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사 참배자 이름표 격인 '센쟈후다(千社札)'를 기념품으로 사는 일이 늘고 있는데, 조니뎁 때문입니다. 일본을 찾은 조니뎁이 '센쟈후다(千社札)'를 액세서리로 착용한 모습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일본 기념품'이 또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관광객 비자 완화는 우리도 하고 있는 것이고, 엔화 약세는 언젠가는 변할 겁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하나의 관광상품화하는 일본의 전략이 아닐까요. 그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돌아가느냐, 아니면 다시는 안 온다는 '서운함'으로 돌아가느냐를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한류'라는 엄청난 문화 상품을 바탕으로 '한국을 제대로 파는'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국에 근무하는 일본 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다이나믹 코리아'는 분명 엄청난 상품입니다. 사실 일본이 공을 들이는 '쿨재팬(일본 문화 확산전략)'도 '한류'에 자극받은 측면이 크고.
하지만 '인천공항 택시비 40만 원 바가지' 기사나 하루 150건씩 관광객들 불편 민원이 잇따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관광산업마저 '눈 앞에 놓인 당장의 이익'을 너무 좇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