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이 모자라 다시 장만해 하느라고 이틀에 걸쳐 김장을 했다.(중략) 하도 남쪽으로 내려와 북과는 기후가 달라 '이렇게 하면 시어진다', '저거 넣으면 시어진다', '국물을 해도 안 된다'하니 처음에는 정신이 다 어벙벙해지더니만, 여기서는 그냥 막 짜게 맵게 안 하면 시어져 못 먹게 되는 모양이다" (1946년 11월23일)
"경희가 요즘 무럭 큰다. 배 안에 털이 곱게 빠지고 머리칼이 거무스레 나온다. 다리가 통통해오며(중략) 아마 경자보다 키는 클 모양이다" (1947년 2월16일)
1946년 당시 20대 초반의 평범한 주부 임영자(93·용산구)씨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녀들의 성장과 집안 대소사 같은 일상의 크고작은 일을 담아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내조·육아의 기쁨이나 보람과 더불어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한 데 대한 후회와 외로움이 곳곳에 나타나 당대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임 씨의 일기는 구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임 씨는 1946년부터 1947년까지, 1960년부터 작년까지 총 57년 분량의 일기를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기증했습니다.
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개인이 20대부터 90대까지 계속해서 일기를 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 시대 평범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의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개인·단체로부터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민간 기록물 22만여 점 가운데 임영자 씨의 일기를 비롯해 270여 점을 엄선해 내일(22일) 성남 서울기록관에서 '나의 삶과 기록, 역사가 되다'를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 실명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1992년 인터뷰 영상 ▲ 금연운동에 앞장선 박재갑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의 일지와 금연건의문 ▲ 급여명세서의 변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기재(61)씨의 월급봉투 등을 볼 수 있습니다.
▲ 최초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1956)과 TV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 대본(1980년대) ▲ 6·25전쟁 당시 내무부 치안국 태백산지구 경찰전투사령부의 전투상황을 담은 '태백전사' ▲ 주한 미군이 찍은 1954∼1955년의 서울풍경 ▲ 파독 간호사의 가족이 독일로 보낸 편지(1973) 등도 선보입니다.
(SBS 뉴미디어부)
평범한 주부의 57년 일기,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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