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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면허증도 운행 목적도 "묻지 마"…막강 '국정원 버스' 탑승기

[취재파일] 면허증도 운행 목적도 "묻지 마"…막강 '국정원 버스' 탑승기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5.10.20 15: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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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면허증도 운행 목적도 "묻지 마"…막강 국정원 버스 탑승기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올림픽 대로에서 잡힌 국정원 버스

 국가정보원 국정감사는 취재방식이 좀 독특합니다. 국가정보원 내부에 마련된 국감장에 들어오는 기관 간부들부터 발언 내용까지 모두 대외비이기 때문에 취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기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하듯이 여야 간사가 국감 중간에 기사화 가능한 내용만 따로 브리핑을 하는 방식입니다. 국감장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일 년에 한 번,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도 국정원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별관에 마련된 건물에 기자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이런 방문조차도 흔한 기회는 아닙니다. 
 
 국정원은 취재 편의를 위해 국회 기자들을 내곡동 국정원 청사로 태워갈 버스를 아침 일찍 국회로 보내줬습니다. 내비게이션에도 안 나오는 곳을 찾아 헤맬 생각을 했는데, 버스를 보내준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대의 버스에 기자들이 나눠 타고 국정원으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용감한 경찰이 국정원 버스 가운데 한대를 막아 세웠던 겁니다. 

● "면허증은 제시할 수 없습니다"…국정원 직원증은 치외법권 인증서?

 상황을 보니 국정원 버스가 올림픽 대로에서 1차로로 주행하다 이를 발견한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인 올림픽 대로에서 대형 버스는 3, 4차로로만 달리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위반할 경우 범칙금 최대 3만원, 벌점 10점이 부과됩니다. 버스가 1차로로 달리면 다른 차량의 시야를 가리고 사고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상황이어서 올림픽대로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차선을 위반해가며 1차선으로 달릴 이유는 특별히 없었습니다. 

 차를 한쪽으로 세운 경찰이 국정원 버스에 다가와 지정차로 위반 사실을 고지하고 운전면허증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이 건넨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면허증은 제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한 겁니다. 버스 옆에 같이 탄 직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미치겠네"라며 가벼운 탄식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통 경찰관은 완강했습니다. 법을 위반했으니 딱지를 끊어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습니다. 참다못한 다른 직원이 자신의 국정원 신분증을 보이며 "이래도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버스가 국정원 소속 차량으로 긴급차량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경찰관이 만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긴급 차량도 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응수했습니다. 운행 목적이 뭐냐고 경찰이 물었는데, 국정원 직원은 "목적은 말할 수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국정감사라는 통상적인 국회의 공무가 엄청난 대외비로 포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만 타고 있는 버스라면 달랐겠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기자였으니 국정원 직원들이 난감했을 겁니다. 직원들이 버스에서 내려 교통경찰과 조용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한참을 얘기하던 경찰관이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게 목격됐습니다. 한 직원이 "연락처를 달라, 조치하겠다"고 말하자 교통경찰관은 "신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사람에게 내 연락처를 왜 줍니까"라고 까칠하게 응수하고는 돌아갔습니다. 

 어찌된 상황인지 국정원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해당 경찰관이 국정원 버스가 계속 1차로로 주행한 것으로 오해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사건이 종결됐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버스에 있었던 취재 기자 입장에서는 딱지를 끊으려던 용감한 경찰관이 국정원 직원들의 위세에 눌려 그냥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 국정원의 전매특허 ‘대외비’가 약점 감추기 위한 핑계는 아닐까

 수사 기관의 특성상 목적을 숨기고 일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음지에서 활동해야하는게 국정원 직원의 숙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통 딱지를 모면하기 위해 대외비를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감히 경찰 따위가 국정원 직원을 단속해?'라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에서 그런 식으로 대응했던 건 아닐지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차를 세운 경찰관에게 면허증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총을 겨눴을 겁니다.

 아무리 억울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면허증 제시, 긴급 차량의 사용 목적을 말하는 것은 운전자의 기본 의무입니다.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이지만, 이런 일을 보면서 국정원 내부 조직 문화에 여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정원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외비라는 표현이 조직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손쉬운 핑계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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