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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결혼도 이혼도 부모가 시킨다?

결혼 전략을 공부하는 부모들

[취재파일] 결혼도 이혼도 부모가 시킨다?
최근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주차장 이론'이 화제입니다. 한 대형 결혼정보 업체 대표가 내놓은 이 이론을 들으면 모든 부모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고 합니다. 주차장 이론은 간단합니다. 너무 좋은 자리만 찾다 보면 그나마 덜 좋은 자리를 다른 차량에게 빼앗긴다는 겁니다.

백화점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때 누구나 백화점과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주차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주차 공간만을 찾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다른 주차 공간을 빼앗기고 결국, 한층 더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적당히 좋은 자리가 있으면 너무 욕심내지 말고 잡아라."라는 교훈을 설명한 겁니다.

자녀가 배우자를 고를 때 경제적 능력, 집안, 학력, 외모 등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 즉, 백화점 입구와 가장 가까운 주차공간을 찾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니 이 가운데 포기할 건 포기하라는 겁니다. 주차장 이론에 의하면 자신이 가장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순서대로 나열한 뒤 포기할 것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마음을 비워야 결혼에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주차장 이론을 비롯한 이른바 '결혼 전략' 강의를 들으려고 최근 부모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습니다. 결혼에도 전략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점과 이 전략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들이 결혼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결혼 전략 강의를 듣는 부모들은 대부분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하게 됩니다. 물론 자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적극적 바람에 따라 자녀를 등록하는 겁니다. 맞선이라는 거대한 '드래프트 시장'에 내 아이를 내놓는 부모들은 상당히 '절박한' 심정이라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 기준으로는 이미 혼기가 지난 자녀가 결혼 생각은커녕 애인조차 없다는 사실에 조급함을 느낀 부모들이 자녀 몰래 결혼 정보회사에 등록하고 자녀에게는 아는 지인 소개라며 거짓말까지 하면서 맞선 자리에 내보내는 겁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부모 대리 맞선까지 등장했습니다. 성장환경과 집안 사정이 비슷한 자녀를 둔 부모들끼리 먼저 '맞선'을 본 뒤 마음에 들면 그다음에 자녀들끼리 만나게 되는 거죠. 예비 사돈끼리 먼저 맞선을 보는 만큼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한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런 부모 대리 맞선에 대한 수요가 너무도 많아 결혼 정보 회사에서는 매칭 날짜를 잡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부모 대리 맞선은 부담스럽고 결혼 정보 회사는 너무 상업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윗감과 며느릿감을 찾기도 합니다. 강남권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주민끼리 서로 모여 자녀의 맞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니까 생활 수준도 비슷하고 부모들에 대한 평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기 때문에 모임이 생긴지 일 년도 안 돼 회원 숫자가 2백 명이 넘었습니다. 이른바 '매칭 맘'이라는 내 아이의 짝을 직접 찾아 나선 어머니들의 모임입니다.

부모 대리 맞선에, 아파트 단지 내 '매칭 맘'까지 이 정도면 자녀가 결혼하는 건지 부모가 결혼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이렇게 자녀의 결혼에 집착하는 걸까요?

역시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큽니다. 현실적으로 50대 초중반이면 부모 세대 대부분이 은퇴하고 있습니다. 은퇴 전에 결혼을 통해 자녀의 기반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겁니다.

두 번째로는 자녀의 삶을 여전히 부모의 삶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자녀의 등하굣길을 항상 함께 했던 초중고 시절을 지나 수강신청까지 대신해줬던 대학을 거쳐, 취업 자리를 함께 알아봤던 경험이 결혼에까지 연결되는 겁니다.

대부분 부모의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자녀의 결혼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경우 결혼 이후에도 부모가 자녀의 삶에 관여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손자와 손녀의 육아 방식에 개입하고, 가정 살림살이까지 간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부부싸움을 하게 될 경우 양가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갈등의 골이 오히려 더욱 깊어져 이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혼도 부모가 시키고 이혼도 부모가 시키는 겁니다.

자녀의 삶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당연히 피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부모를 둔 자녀는 그나마 행복한 편입니다. 부모가 결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건 그만큼의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상당수 결혼 적령기 남녀들은 스스로 결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나의 미래를 보고 결혼해줘. 지금은 월세부터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호강시켜 줄게"라며 남자친구가 청혼한다면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반대로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비록 번듯한 직장도,모아 놓은 돈도 없지만 나와 결혼해 행복하게 해줘. 예쁜 아이 낳고 알뜰하게 살림할게."라는 여자친구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로맨틱하고 풋풋한 청혼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식의 청혼 멘트를 요즘을 거의 들어볼 수 없습니다. 너무도 현실적인 요즘 세대들은 전셋값 정도는 마련하고, 적당한 혼수 비용 정도는 준비해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런 이유 때문에 결혼이 늦어지고 부모의 도움 없이는 결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게되고, 부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은 결혼이 늦어지거나 어렵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구조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경제적 '계급'이 굳어지는 씁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혼의 시기와 조건 등이 결정되는 이런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지 오래라는 점이 더욱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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