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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ETRI '3D 기술로 맞춤구두 제작'…진위 논란

[취재파일] ETRI '3D 기술로 맞춤구두 제작'…진위 논란
박근혜 정부의 최대 경제 화두는 ‘창조 경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결부돼 ICT(정보통신기술)와 문화가 결합된 기술 집약적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과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까요? 정부 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 연구 기관도 아이템 발굴과 가시적 성과를 내 보이려고 여간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ETRI가 보낸 보도자료
정보통신 분야 우리나라 최대 국책연구기관의 하나인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도 고민이 깊습니다. 점부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ICT 분야의 창조경제 구현 아이템 개발에 꽤나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ETRI는 지난 7월 22일 보도 자료를 한 건 내놓았습니다.

제목을 보면 'ETRI, ICT 이용해 맞춤구두 제작한다 ..ICT가 구두산업에 접목,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이란 내용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D 스캐너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맞춤형 구두제작 기술을 개발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ICT를 활용해 ’맞춤형 구두골(발 모양 형틀) 제작 기술‘과 ’구두의 전자 가봉분석 기술‘입니다.
3D 스캐너로 발을 스캔한 모습
전자가봉 분석 시스템
맞춤 구두골 제작기술은 3D 스캐너로 발을 스캔해 3D 프린터를 사용하여 구두골을 제작하는 기술입니다. 또 구두의 전자가봉 기술이란 구두가 발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점검할 때 압력센서와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객관적인 수치와 그림으로 분석 및 판단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이 기술을 활용하면 자기 발에 맞는 편안한 맞춤형 구두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ETRI 전직 연구원 출신의 조 모 박사는 “발을 스캐닝하면 발 뼈와 근육의 구조가 그대로 구두골에 반영되어 구두골의 형상이 마치 구두가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은 느낌을 줄 수 있게 돼 그만큼 정확하게 맞고 편한 맞춤형 구두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활동량이 많은 직장인이나 오랜 시간 서서 근무하는 특수직 근무자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여성이나 무대공연 연예인 , 운동경기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 박사는 “이 기술 개발로 종전 수작업에 의해 플라스틱 덩어리로 구두골을 깎는데 최고급 기술자가 약 1개월의 시일이 소요됐지만 본 기술로는 단 하루면 충분하다”며 ETRI의 원천기술이 산업에 본격 응용되어 짐으로써 누구나 편안한 신발을 손쉽게 공급받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습니다.
 
체인점 서비스 개념도
그는 나아가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은 3D 스캐너, 전자가봉 시스템, 노트북 등 최첨단 장비를 갖춘 맞춤구두 서비스 체인점을 열 수 있다“며 ”이는 신개념 구두방인 ’슈즈 스튜디오‘(신개념 동네 구두방)가 되어 약 3천개의 체인점이 개점되면 약 만 명의 청년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사양산업인 구두산업을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로 회생시킬 수 있는 확실한 처방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TRI는 조 박사에게 5천만 원의 연구 사업비를 지원했습니다. 또 “이번 성과는 국민의 아이디어를 가치화 해주는 대한민국 사업 아이디어 플랫폼인 “창조경제타운‘의 도움을 받은 값진 성과로 ETRI의 창업공작소를 통해 멘토링 지원도 톡톡히 받았다” “창조경제의 대표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ETRI의 보도 자료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 등에 크게 기사화 됐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간 뒤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게 한 건의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ETRI의 발표는 ‘과대 포장된 거짓’이라는 겁니다.
S 상사 내부 맞춤형 구두 진열 장면
제보를 한 부산의 맞춤형 구두 제작 전문업체인 S상사 백 모 대표를 만나 보았습니다. 참고로 S상사는 우리나라 맞춤형 구두골 제작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문 맞춤형 구두 제작업체로 40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리스트 김연아 선수를 비롯해 유도 금메달리스트 하형주 전 국가대표 등 우리나라 유명 운동선수의 구두를 제작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ETRI와 용역 계약을 해 맞춤형 구두 20 컬레를 제작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ETRI가 보도 자료를 내고 시연을 할 때 공개한 20 컬레가 바로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백 대표는 3가지 핵심 쟁점을 반박 근거로 내놓았습니다.
첫째는 조 박사의 3D 스캐닝으로는 발 모양을 정확히 반영한 구두골을 제작할 수 없으며 둘째로 구두골 제작에 한 달 소요된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고 셋째 조 박사의 3D 프린터로서는 고강도의 압력에 견딜 수 있는 고농축 폴리에틸렌 구두골 재질을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첫째 쟁점인 편안한 구두골 제작 유무의 문젭니다.
앉아서 스캐닝하는 조박사
조 박사는 구두골 제작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 3D 스캐닝 작업에서 앉아서 발 모양을 측정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앉아서 측정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주장입니다.
서서 스캔하는 장면
하지만 백 대표는 정확한 발 모양 측정을 위해서는 사람의 체중이 가미된 스탠딩 방식 즉 서서 측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백 대표는 “앉아서 발을 측정하는 것은 자기의 체중이 실리지 않아 제대로 된 신발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첨단 신발산업 연구의 대표적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 박승범 박사(신발산업진흥센터 성능평가팀장)의 견해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는 “전 세계 유명 브랜드 신발제조사의 95% 이상이 서서 발을 측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체중으로 인한 발의 변형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스탠딩 방식이 더 유효한 걸로 연구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박사 자료 수치
백대표 자료 수치 대비

또 조 박사는 S상사에 맞춤형 신발 제작 용역을 주면서 자신들이 측정한 발 스캔 자료를 제공했는데 그 항목은 발길이와 볼 둘레 두 항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각 항목 마다 힘 준 것과 힘 뺀 것의 수치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자신들의 스탠딩 측정에서는 발길이와 볼 넓이는 기본이고 발등 둘레와 높이, 업지와 새끼 발가락 각도 등 12개 항목을 측정한다며 “조 박사의 데이트로는 정확한 구두골을 만들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이메일로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둘째로 구두골 제작에 수작업으로 한 달이 걸린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백 대표는 “요즘 구두골 제작을 수작업으로 하는 곳은 없다”며 ”자신의 회사에서 하루면 충분하다”며 “과장 엉터리 발표”라고 밝혔습니다.
 
셋째로 조박사가 보유한 3D 프린터로서는 고강도 구두골을 만들 수 없다는 백 대표의 발언에 대해 조 박사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 박사는 “그래서 S상사에 구두골 제작을 의뢰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ETRI에 고강도 구두골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취재진이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백 대표는 “조 박사의 3D 기술로는 인형 따위의 모형물 형상만 측정하여 제작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맞춤형 신발을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가 수십 년간 연구해 온 뿌리 기술을 정부 용역기관에서 두어 번 찾아와서 용역을 맺어 놓고는 자기가 한 것처럼 기술을 도용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고 분개해 했습니다. 또 만약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어떠한 민, 형사상 처벌도 받겠다고 밝히고 ETRI의 공식적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TRI와 조 박사는 이에 대해 “이번 내용은 ETRI가 맞춤구두 제작 공정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보도한 것으로 이는 지적 재산에 해당하는 ‘방법’이나 ‘원리’를 개발하였다는 의미일 뿐 ETRI가 구두 자체를 제작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연구개발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연구목적으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외부에 용역을 주어 제작하기도 한다“며 ”이번 S상사에 용역 계약을 맺은 것도 연구의 적합성 실험을 위해 제작을 의뢰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조 박사는 조만간 창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관련 신발업계에서는 ETRI가 제시한 신기술이 곧바로 상용화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신발진흥연구원 박승범 박사는 이 기술이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이 가능하지만 일반인에게 파급돼 곧바로 사업화한다는 것은 진짜 비상식적“이라며 상용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이 기술이 신기술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는 반응입니다.
 
저는 신발제작 기술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창조경제의 성과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공무원은 물론 공공기관 연구자 등 많은 관련자들이 창조경제 성과에 대한 조급한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과는 하루 아침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기관장들은 성과에 목을 매달고 직원들에게 결과물을 요구하는 형국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성과를 위해 때로는 뻥튀기기와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한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ETRI의 성과 발표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 반성해 볼 대목입니다. 물론 ETRI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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