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나이트라인 초대석 인터뷰내용입니다.
Q : 선생님은 정말 연세를 안 드시는 것 같은데 벌써 40주년이 됐어요. 실감이 나세요? 어떻습니까?
- 저도 40년이 벌써 됐나 너무 이상해요, 감회가. 너무 세월이 빠른 것 같고. 난 한 10년이나 15년 된 것 같은데.
Q :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 정상에 서시는 분들은 다 어릴 때부터, 일찍부터 시작하시는데 우리 선생님은 마흔에 시작하셨는데요. 그때 어떻게 한복을 접하게 되셨나요?
- 우연한 기회에 누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복을 많이 입었기 때문에, 어머님이 항상 염색해서 바느질하고 이런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하게 안 들렸었요. '아,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일주일 만에 결정을 했어요.
Q : 1993년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하셨는데 그때 굉장했죠? 어땠습니까?
- 지금 생각하니까 아찔해요. 그때는 우리 여인에게, 한국인에게 아름다우면 세계 어떤 여인이 입어도 아름다울 거라는 자부심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한복을 어떻게 하든지 세계인에게 입혀야겠다, 88올림픽을 기해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그 한을 풀려고 나갔죠.
Q : 그리고 그 다음 해죠, 1994년. 저 뒤에도 나오는데 그때 파리에서 저고리를 없앤 (한복을) '바람의 옷'이라고 그러는데 그때 반응은 어땠나요?
- 쇼를 하고 있는데요, 기자들이 죽 나오는데 눈물을 모두 이렇게 닦아요. 그래서 눈에 무엇이 들어갔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는데 '왜 눈물이 나냐'고 했더니 색상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울었다고). 그래서 옷을 보고 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Q : 정말 파격적인데,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세요?
- 저는 우주도 디자인할 수도 있다고 그랬거든요, 어떤 기자하고 인터뷰하면서. 그게 무슨 소린가 하면 한복의 깊이를 알고 한복을 진짜 사랑한다면 그 한복 위에서 모든 아이디어가 나와요. 첫째, 색상, 또 기능성. 그 예쁜 치맛자락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저절로 나오고 있어요.
Q : 그동안 많은 컬렉션, 쇼를 해오셨는데 (500회는 넘을 것 같아요.) 아, 그렇죠.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 저는 제 운명을 생각할 때 평생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한복을 접하게 됐다는 운명적인 일과 또 한복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끼리만 입으면 별 그런 게 없잖아요. 그래서 세계무대에서 처음으로 모던하게 세계 사람들이 입도록 제가 선을 보였잖아요, 파리에서. 그런데 밤사이에 대스타가 됐어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제가 잊을 수가 없죠.
Q : 정말 반평생을 한복과 함께 해오셨는데 이영희 선생님에게 한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 한복은 저의 꿈이면서 저의 행복이면서 정말 바램이에요. '바람, 바램'이죠, 요번 전시회(의 이름이).
Q : 지금 40년 세월을 집대성한 전시회도 열리고 있죠?
- 지금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이 와요. 학생들, 어린 유치원생까지 왔어요, 오늘. 그걸 볼 때 한복이 이러다가 안 입고 없어지나 이런 고민도 했는데 저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Q : 앞으로 또 하고 싶은 것,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좀 해주시죠.
- 이어령 전 장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영희는 뜨기만 떴다, 날아야 된다, 비행기처럼 날아라 그러는데 우리 한류풍도 지금 떴어요. 그런데 날게끔 우리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류가 지금 떴다고 세계를 장악한 게 아니잖아요. 더 날아야 되거든요. 우리 전통이 세계로 날아 다녔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이번 전시회를 기해서 단 한 벌의 옷이라도 어떤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나와 비슷한 길을 가주기를 그게 제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