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사할린 강제동원자 의붓딸, 20년 찾던 부친 친손자 상봉

"아이고, 이제 내가 죽어도 한이 없다. 아버지하고 닮았네, 닮았어요."

"고모라고 부를게요. 친척이 없어 외로웠는데 고모가 생겨 너무 좋아요."

기일성(76·여) 씨는 추석을 며칠 앞둔 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사무실에서 박성주(52) 씨를 만나자마자 한을 푼 듯이 눈물을 글썽였다.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가 이역만리에서 맞아 들인 의붓딸이 아버지의 친손자를 찾아나선 지 20년 만에 드디어 상봉하는 순간이었다.

박 씨는 1944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살던 박영주(1915∼1973) 씨가 사할린으로 끌려가기 전 국내에서 본 친손자이고, 기 씨는 박영주 씨가 동원된 지 10여 년 뒤 사할린에서 재혼하면서 맞이한 의붓딸이다.

기 씨는 의붓아버지를 스스럼없이 '아버지'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그가 언급될 때마다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면서 연방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생전에 아버지께 한국에 남은 자식들이 있는지 물었더니 '아들과 딸 하나씩을 보고 왔는데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 만약에 내가 한국에 가면 꼭 찾아드릴게요' 하니까 '응, 그래, 알았다' 하고 답하셨던 기억이 나요." 기 씨는 1996년 한국에 왔을 때 의붓아버지가 남긴 아들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영주귀국한 2009년에도 경찰서를 찾아 사진과 서류를 내보이면서 찾아달라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런 기 씨를 도와 의붓아버지의 친손자를 찾아준 것은 신윤순 사할린강제동원억류피해자한국잔류유족회장과 강제동원위원회였다.

신 회장이 사연을 듣고 위원회에 연락했고, 위원회는 동원피해 신고 명단을 뒤져 박 씨를 찾아냈다.

박 씨는 기 씨가 사할린에 세운 할아버지 묘비에 부착한 사진을 보고 "묘비 사진을 보니 예전 아버지 모습과 닮았다"면서 "아버지는 할머니·고모와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한국전쟁 때 두 가족도 잃고 10대 때부터 혼자 외롭게 사셨다"고 전했다.

박 씨의 아내인 강순현(53) 씨는 기 씨를 보고 "고모라고 부를게요. 저희가 고모도 없고 친척도 없어서 외로웠는데…"라며 반가워했다.

박 씨 내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도 몰랐지만 우연히 매년 실제 기일과 비슷한 날짜에 제사를 모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박 씨는 사망한 날짜를 모르는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망제일(忘祭日)인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실제로 박영주 씨는 음력 1973년 9월 11일에 별세했다는 것이다.

기 씨는 박 씨 내외에게 "내년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자"고 제안하고는 조카들에게 식당 밥을 먹일 수 없다며 경기 오산의 자택으로 박 씨 내외를 초대해 점심을 차려주며 가족의 정을 나눴다.

(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