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피델 카스트로가 손을 맞잡은 모습은 쿠바를 찾은 교황의 행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로 남을 것 같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과 쿠바 혁명 지도자의 만남이다. 한 사람은 사제복을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브랜드와 세줄 띠가 선명한 아디다스 점퍼를 걸쳤다. 동영상보다는 사진 한 컷이 인상적이다.
교회와 정치의 만남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굴곡의 현대사를 상징한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 공통점이다. 프란치스코는 1936년 생이다. 피델은 10년 이른 1926년 생이다. 같은 대륙 중남미에서 성장한 동시대인이다. 쓰는 말도 같다. 한 사람은 사제에서 교황으로, 한 사람은 혁명가에서 국가지도자로 걸어온 길이 다를 뿐이다.
프란치스코는 일요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한 뒤 피델의 자택을 찾아갔다. 종교와 세계 문제들을 놓고 30여 분 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두 사람이 풀어놓은 선물 보따리가 흥미롭다. 교황청 설명을 보면 교황은 자신이 작성한 회칙과 함께 종교 서적을 선물했다고 한다. 예수회 소속 신부가 지은 책이다. 피델이 다닌 예수회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1959년 혁명 뒤 쿠바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AP 통신은 "눈이 휘둥그레질 선물"이라고 적었다.
카스트로도 만만치 않았다. 카스트로는 자신과 해방신학자가 나눈 대담을 기록한 책 ‘피델과 종교(1985)’를 교황에게 건넸다. 이쯤 되면 '구원(舊怨)'이 쌓인 교회와 정치가 '구원(救援)'을 놓고 다시 한 번 맞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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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舊怨)’은 1959년 쿠바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바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다.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에게 가톨릭은 앙시엥 레짐, 구체제였다. 더구나, 반체제 세력과 미국의 CIA가 합작한 1961년 피그만 침공 사건에 가톨릭 사제 4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가톨릭에 대한 피델의 증오는 굳어졌다. 종교 탄압에 나섰다. 교회 재산과 학교 등 시설을 몰수하고 성물을 파괴했다. 사제들을 스페인으로 추방하고 정치에 가담한 이들은 '노동 교화'를 시키기도 했다. 공산주의 유물론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었다.
쿠바의 종교 탄압은 30년 간 이어졌다고 한다. 아바나 광장에 모여든 수만, 수십만 인파를 보면 아무리 혁명의 시대라지만 어떻게 그러한 박해가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기댈 곳이 없어지면서 쿠바도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1992년 헌법 개정으로 쿠바는 명시적인 ‘무신’ 국가에서 ‘세속’ 국가가 됐다. ▶참고 (클릭)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본 베르고글리오(어린 시절 프란치스코의 세속명)에게는 가슴이 찢어질 일이었을 게다.
첫 미사가 열린 쿠바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서도 교회는 정치와 마주쳤다. 교황이 지나가는 길에 반체제 인사 3~4명이 갑자기 나타나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무릎을 꿇기도 했다. 현장의 외신 취재진에 의하면 "자유"를 외쳤다고 한다. 한 남성이 교황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교황은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이 남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성호를 그었다. 이 남성은 곧 사복 차림의 보안 요원이 끌려 갔다. 교황 방문을 전후해 반체제 인사 수십 명이 경찰에 끌려갔는데, 그렇게 가혹한 대우를 받지는 않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교황은 반체제 인사들과 정식 만남을 가지지는 않기로 하며 정치와 종교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교황의 메시지는 그 선을 넘나들기에 충분했다. 쿠바 광장 미사에서 이념이 아닌 사람을 섬기라고 설파했다. 이데올로기인지 관념인지 생각인지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이든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 정치 않는 정치인
교황의 쿠바 방문에 정치색은 없다는 게 교회의 입장이지만, 영향력과 파장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다. 앞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1998년 쿠바를 찾았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2012년에는 베네딕트 16세도 쿠바에서 카스트로를 만났다. 그리고 3년 밖에 지나지 않은 2015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카스트로 형제의 정치적 고향도 방문했다. 다음 행선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다.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고 사상 처음으로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한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 대표가 초청했다. 둘다 가톨릭 신자다.
다들 기대감이 높다. 교황의 현지 방문의 1차 목적은 신도들과 가까이 만나고 또 교회의 부흥을 위한 것일 게다. 그럼에도 교황을 맞는 이들 저마다 정치적 계산이 없다 하면 그건 또 거짓말일 게다.
교황은 이미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중재 역할을 하며 일조했다. 쿠바의 현 지도자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금수조치를 해제하는데 도움을 바라고 있다. 입법 사항이라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가 열쇠를 쥐고 있는데 교황의 '한 말씀'이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교황은 이미 라울의 정치적 동지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포용을, 기후 변화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문제를, 무작정 국경을 넘는 어린 이민자들 문제 같은 것을 거론해 줬으면 하는 눈치다.
일부 대선 주자들을 비롯해 공화당 보수계는 교황의 자유주의적 현실 인식을 비판하고 있지만, 생명 존중, 낙태 반대 등 자신들의 어젠다를 당연히 거론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가톨릭 주교는 방송에 나와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이 선생님을 가르침을 듣듯 좀 불편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쯤 되면 교황은 '정치 않는 정치인'이다. 쿠바에서 공존의 방식을 설파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워싱턴 방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