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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술은 OK, 진료는 NO…환자 가려받는 의원들

'피.부.과' 세글자가 무안해 집니다

간단한 피부 진료를 문의하기 위해 피부과로 검색해 인근의 가까운 의원을 찾습니다. ‘ㅇㅇ 피부과’ ‘ㅇㅇ의원 진료과목 피부과’ 이렇게 적혀 있는 글자를 보고, 별 생각 없이 들어갑니다. 증상을 얘기하고 접수를 문의했는데, 안네데스크 직원이 뜻밖의 말을 합니다. “저희는 미용쪽이어서요.” 피부과 진료하는 곳에, 피부 진료를 하러 갔는데,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는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택시에만 승차 ‘거부’가 있는 게 아닙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당연히 ‘진료 거부’로 느껴질 것입니다.

요즘 이런 경험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피부과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분노의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도 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두 여성의 사례는 이렇습니다.

아토피 증상이 있는 함모씨는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 진료 의뢰서가 필요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피부질환을 앓던 함씨는, 진료 의뢰서는 간단하게 뗄 수 있다고 해서 회사 근처 의원을 찾았습니다. 분명히 '피부과‘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내데스크에서 다른 곳을 가시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미용 시술만 하는 곳이어서 간단한 진료도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피부질환이 있어서 피부과라고 갔는데요. 마치 제가 안과를 갔나, 이비인후과를 갔나, 이런 착각이 들 정도여서 놀랍기도 하고, 솔직히 너무 이상했어요.”

박모씨는 얼굴에 여드름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올라와서 의원을 찾았습니다. 안내데스크에서는 보험 진료는 취급하지 않는다면서 접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황당하게도, 시술 치료를 끊으면 서비스로 진료를 해주겠지만, 진료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결국 발길을 돌린 박씨는 이후 다른 의원을 찾았습니다. 여드름이 아니라 피부에 생긴 종양의 일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미용 시술 광고를 하는 의원들을 찾아가서 습진이나 아토피 치료가 가능한지 문의했더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A의원
여기서는 진료가 안 돼요?
- 네.
치료 같은 건 안 하세요?
- 저희는 미용 쪽으로만 하는 거고요. 치료목적이세요? 그러면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자신들이 피부과이기는 하지만, 레이저 치료나 시술 치료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험 처리를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당연스럽게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진료 접수를 받는곳을 가더라도, 불쾌한 상황은 또 벌어집니다. 예약 가능 여부에서부터 일반 환자와 시술 환자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한 의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취재진 1명이 피부 치료를 하고 싶다고 하자, ‘오늘은 예약이 다 차 있다. 기다리면 의사 진료가 가능하지만, 얼마나 대기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안내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예약이 되는지 문의했는데, 일반 진료의 경우에는 아예 예약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후 바로 다른 취재진이 들어가서, 시술 상담을 하러 왔다고 문의했습니다. 반응은 달랐습니다. 당일 예약이 아니어서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당일도 원장님 상담이 가능하다, 시술까지도 가능하다‘라고 안내했습니다. 한 직원은 ‘다른 날로 예약을 해드리는 게 어떨까요?’ 라고 상냥히 묻기도 했습니다. 지불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에 따라 대우가 다를 수 있다고 치더라도, 예약 여부를 아예 달리 두고 있는 것은 지나친 차별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최근 고가의 시술 치료에 주력하는 의원들이 많아지면서, 의료소비자들의 불만은 늘고 있습니다. ‘의료인은 진료..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의료법 15조에 규정된 진료 거부 금지조항입니다. 접수를 거절당한 환자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사유로 거절을 당했다고 생각할까요? 취재 중 만난 두 여성은 자신들이 겪은 상황이 당연히 ‘진료 거부’에 해당되지 않겠느냐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시술 환자만 골라 받는 의원들의 이 같은 행태가 ‘진료 거부’로 인정돼 제재를 받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상 전무하다고 보면 됩니다. 최근 3년 동안 행정처분 받은 건수는 단 세 건 뿐입니다. 2013년 1건, 2014년 0건, 2015년 2건입니다.

이에 대해 보건 시민단체, 의료 소비자 단체는 환자들의 체감 정도와는 동떨어진 수치라고 지적합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의료기관이 진료를 거부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설명입니다.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한 예시 일부는 이렇습니다.
□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예)

○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하여 진료를 행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 병상, 의료인력, 의약품, 치료재료 등 시설 및 인력 등이 부족하여 새로운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 의원 또는 외래진료실에서 예약환자 진료 일정 때문에 당일 방문 환자에게 타 의료기관 이용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
○ 의사가 타 전문과목 영역 또는 고난이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피부과 비전문의가 전문의 치료를 받으라는 취지로 다른 병원을 갈 것을 권했다면, 예약 환자 일정이 있다면, 진료 거부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진료 거부’ 사안을 담당하는 서울 시내 한 보건소 직원은 ‘정당한 사유’가 아니었을 경우에도, 환자가 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예시를 보고, 납득이 가십니까. 보건 시민단체인 건강 세상네트워크 이행순 활동가는 보건당국의 입장과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씨는 그러면서, “과거 성형외과의 사례처럼 피부과도 병의원의 기능보다는 미용의 기능으로 넘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진료거부와 관련해서는 상식적인 부분들이 포함이 되지 않고 있고, 환자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건 부당한 진료 거부라는 것이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도록, 보건 당국이 제재 기준을 현실에 맞게 고치고 감독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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