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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별에 대처하는 메이웨더의 자세

‘49전 49승’, 전설은 썼는데…

[취재파일] 이별에 대처하는 메이웨더의 자세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19년 정든 링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지난 13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WBA 웰터급 잠정 챔피언 안드레 베르토와 은퇴전을 치른 겁니다.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Undefeated) 수식어 그대로, 메이웨더는 이번에도 승리를 지켰습니다. 49전 49승, 영화 <로키>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복싱 전설 로키 마르시아노의 대기록과 나란히 서며,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일단’ 마감했습니다.

● "다 이루었도다…" 글쎄?

‘최후의 승자’ 다웠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스포츠에서 모든 것을 이뤘다(I've accomplished everything in the sport)면서, 자신의 기록이 ‘복싱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무하마드 알리와 슈가 레이 레너드 등 전설적인 복서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문을 열어 내가 걸어온 길을 터줬다”고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은근슬쩍 자신을 같은 반열에 끼워놓은 겁니다. 덧붙여 후배들이 자신의 기록을 깨 주기를 원한다면서, 정상에 오른 자의 여유도 보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링과의 이별’을 앞두고 메이웨더가 보인 ‘낯선 모습’입니다.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메이웨더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승리에 도취돼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긴 했지만, 은퇴전이 발표되고 성사되기 직전까지 메이웨더는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이타적인’ 언행을 이어갔습니다. 은퇴전 상대 안드레 베르토에 대한 언급이 특히 그랬습니다.

베르토와 처음 같은 자리에 선 지난달 6일, 기자회견에서 메이웨더는 이번 은퇴전이 매우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베르토를 치켜세웠습니다. 두 번이나 챔피언벨트를 차지했고 자신처럼 복싱에 모든 것을 바친 사나이라면서 베르토가 자신을 밀어붙일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한 번 뿐이 아닙니다. 이후 경기 전까지 이어진 몇 번의 기자회견에서도 메이웨더는 베르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좀 어색합니다. 억지 냄새가 솔솔 납니다. 메이웨더가 매너 차원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발언을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상대를 칭찬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메이웨더도 눈치가 보였다

이처럼 메이웨더가 ‘이타적 언행’을 이어간 배경에는 안드레 베르토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베르토가 메이웨더의 마지막 상대로 발표되자, 팬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베르토가 WBA 웰터급 잠정 챔피언이라지만, 메이웨더의 은퇴전 상대로는 턱없이 모자란 상대라는 겁니다.

베르토는 이번 경기 전까지 통산 전적 33전 30승 3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세 번의 패배가 모두 최근 6경기에서 당한 것일 만큼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또 메이웨더나 파퀴아오같은 정상급 복서와 상대한 경험도 없습니다. 약한 상대를 골라 편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려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여론에 메이웨더는 신경질적인 반응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와 안드레 베르토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드레 베르토와 파퀴아오의 차이점은 바로 당신들(미디어)이 파퀴아오를 엄청나게 띄운다는 것, 하나입니다. 그게 미디어가 하는 일이니까요(That’s what the media did, 이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메이웨더는 지난 5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파퀴아오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세기의 졸전’을 펼쳤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철저히 수비 위주의 전술로 기대 이하의 재미없는 경기를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메이웨더는 이 같은 비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 이번에도 재미없는 경기가 될 것이라는 여론을 의식한 듯, “KO승을 노리겠다”는 무리수(?)도 던졌습니다. (메이웨더는 2012년 이후 3년 동안 KO승이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제 갈 길만 가는 것 같았던 메이웨더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이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그리 쿨하지 만은 않았으니까요.

● 뚜껑을 까보니…역시나

그러나 복싱 팬들과 미디어의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베르토는 메이웨더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유효타수 232 대 83으로, 메이웨더가 거의 3배 가까이 많은 펀치를 적중시켰습니다. 성공률을 살펴보면 격차는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410번의 펀치를 날려 232번 적중시킨 메이웨더가 57%의 유효타 적중률을 보인 반면, 베르토는 그보다 많은 495번의 펀치를 날려 83번만을 적중시켰습니다. 단 17%로, 메이웨더를 거의 맞히지도 못 했습니다. 압도적인 큰 점수차로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 선언됐습니다.
 경기 내용도 ‘여전히’ 재미없었습니다. “KO승을 노리겠다”는 약속은 또 공수표가 됐습니다. 메이웨더는 이번에도 숄더롤과 아웃복싱으로 포인트를 쌓아가는 철저한 실리 위주의 복싱으로 일관했습니다. 경기 중반 잠깐 불꽃이 튀기도 했습니다, 5라운드 베르토의 카운터가 메이웨더의 얼굴에 얹혔고, 6라운드에는 메이웨더가 베르토에게 잇따라 펀치를 쏟아부으며 장내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베르토의 수세가 역력했지만 메이웨더는 더 들어가지 않았고, 다시 본래의 페이스로 경기를 마지막 라운드까지 몰고 갔습니다. 이번 경기 중계를 맡았던 황현철 해설위원(한국권투위원회 홍보이사)은 “메이웨더가 조금만 더 들어갔더라면 베르토를 KO시킬 수도 있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메이웨더는 언제나 그랬듯 철저하게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택했습니다. 반응도 바로 나왔습니다. 경기 종료 10초를 남기고 승리를 확신한 메이웨더가 춤을 추듯 스텝을 밟자, 장내에는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메이웨더는 당당했습니다. 이번 경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쓰레기같은 얘기”(Trash talk)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베르토가 매우 강한 상대라며 흥미진진한 싸움이 될 것이라던 그의 말은 다시 한 번 복싱 팬들을 기만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 메이웨더, 이별일까, 고별일까?

메이웨더가 “더 이상의 경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메이웨더는 지난 2008년에도 은퇴를 선언했지만 얼마 안가 다시 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그때를 일컬어 “단지 휴식이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전과’가 있는 겁니다.

번복의 동기는 충분합니다. 첫째는 파퀴아오와의 재대결입니다. ‘세기의 떡밥’만 던졌다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5년을 끌어온 대결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양산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전료, 입장료, 시청료 수익 등 숱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경기 내용을 떠나 스토리 면에서 그와 같은 매치업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겁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를 했던 필리핀의 복싱 영웅 파퀴아오도, 마침 재대결 의사를 밝혔습니다. 파퀴아오가 “다시 붙자“고 나오는 판이니 메이웨더만 OK하면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는 ‘50전 50승’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입니다. 메이웨더가 세운 49전 49승 기록은 무려 60년 전 로키 마르시아노가 세운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타이’ 기록입니다. 두 번째 ‘49전 49승’이 나올 때까지 60년이 걸렸으니 ‘50전 전승’은 아마 백년도 갈지 모르는 대기록이 될 겁니다.

 메이웨더로서는 탐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완벽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메이웨더가 은퇴전을 치르고 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메이웨더에게 ‘49와 50’은 차원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겁니다. 대단한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남느냐와 전무후무할 ‘유아독존’으로 남느냐의 차이입니다.

셋째는 역시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일 돈 때문입니다. 1초에 1억 원을 벌어들였던 메이웨더가 굶어죽을 일은 없을 테지만, 그의 엄청난 씀씀이를 감당하려면 역시 수입이 필요합니다. 경기를 치르지 않는 선수는 아무리 대선수라 하더라도 가치가 뚝 떨어지고 맙니다. 이번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된 것은 메이웨더와 쇼타임 사 간의 계약이 여기까지였기 때문입니다. 계약은 다시 하면 그만입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이유들을 라스베이거스의 프로모터들은 그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별이 될지, 고별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헤어짐을 앞에 둔 메이웨더의 자세가 그렇게 멋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조금 궁색하고, 눈치를 봤으며, 신경질도 부렸습니다. ‘화려한 이별’도 아니었습니다. 1분 만에 티켓이 매진된 파퀴아오전과는 달리 표는 남아돌았고 유료 시청자 수도 크게 밑돌았습니다.

 이제는 메이웨더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그도 아마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다시 돌아와 폼나게 이별하고 전설이 될지, 그냥 이렇게 헤어짐을 받아들일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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