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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 신분증 제시하지도 않았어요" vs "신분 밝혔고, 용의자니 잡아야죠"

지난 7일 경기도 안산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밤 9시쯤 해당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20대 취업준비생이 오피스텔 3층에서 체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20대 취업준비생은 경찰과 물리적 충돌로 얼굴을 다쳤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용의자를 오인해서 엉뚱한 사람을 체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용의자와 20대 취업준비생의 인상착의가 너무 비슷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일단, 엉뚱한 사람을 체포한 경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체포과정에 대해서는 좀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체포과정에서는 ‘공권력과 인권’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20대 취업준비생과 경찰은 체포과정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의 주장입니다

- 오피스텔 1층에서 저녁을 먹고 운동 삼아 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 3층에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있었다.

- 그런데,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와 힘으로 자신을 제압하더니 수갑을 채웠다.

- 이때, 두 남성이 자신에게 “경기지방경찰청 성매매 단속”이라고 말하는 것은 들었다.

-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아 경찰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힘으로 제압하는 두 남자가 자신을 납치하려고 하고 하는 듯 해 도망쳤다.

- 자신이 다니는 2층 학원으로 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두 남자는 자신을 따라와 이곳에서 다시 힘으로 자신을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

- 이 과정에서 얼굴에 4cm에 달하는 상처를 입어 14바늘을 꿰매야 했다.

- 두 남자는 자신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관 2명의 주장은 다릅니다.

- 오피스텔에 성매매업소가 있다는 제보를 받아, 제보자를 인근 관공서 주차장에서 만났다.

- 제보자에게 성매매업소 업주의 그날 인상착의를 전달 받았다. 붉은색 상의에 검정모자를 쓰고 어두운색 바지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 업주가 들어가는 모습을 제보자와 확인하고 뒤따라 들어가 보니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춰 있어서 급히 3층으로 올라갔다.

- 3층에서 인상착의가 같은 남성이 다가와 “경기청 ○○○ 경찰관 입니다. 성매매 알선 사건 관련해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니 신분을 확인시켜 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남성이 도망가 진범이라 생각하고 체포했다.

- 체포한 이후, 수갑을 채우면서 체포 이유와 미란다 원칙도 고지했다.

- 연행된 남성이 '억울하다'고 주장해 현장으로 가서 진범을 검거했고, 바로 파출소에 있던 단속반원들을 통해 진범을 검거한 사실을 남성에 알린 뒤 사과했다.

● 경찰은 신분을 밝혔나?

 여기서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은 경찰이 신분을 정확히 밝혔느냐 여부입니다. 20대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경기지방경찰청 성매매 단속”이라는 소리는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경기청 ○○○ 경찰관 입니다.

성매매 알선 사건 관련해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니 신분을 확인시켜 주세요"라고 정확히 신분을 밝혔다고 주장합니다. 일단, 경찰이 남성에게 다가가면서 ‘경찰’이라는 이야기는 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경찰’이라고 하면 신분을 밝힌 건가요?

● 불심검문이었나? 체포였나?

 이 부분에서 또 따져봐야 할 부분은 당시 상황이 ‘불심검문’ 인지, ‘체포’인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불심검문과 체포의 주체는 경찰입니다. 따라서 경찰의 진술과 상황으로 유추해 경찰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면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 대해 먼저 불심검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상자가 완강히 거부하자 일단 수갑을 채우는 체포 단계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처음에 경찰이 20대 남성에게는 다가갔을 상황이 불심검문이라면 경찰은 20대 남성에게 신분증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경찰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불심검문을 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명확히 규정해 놨습니다.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말입니다.

※ 경찰관 직무집행법

④ 경찰관은 제1항이나 제2항에 따라 질문을 하거나 동행을 요구할 경우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질문이나 동행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며, 동행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경찰은 항상 용의자 앞에 등장하면서 신분증부터 보여줍니다. 그런데 취재팀이 확보한 CCTV영상을 봐도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는 모습으로 추정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 CCTV화질이 매우 좋지 않아 정확히 판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



 그런데, 여기서 다른 논리도 있습니다. 경찰의 주장을 다시 따라가 보겠습니다. 경찰은 일단 제보자를 먼저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보자와 함께 건물을 들어가는 용의자를 확인했습니다. 검은색 모자, 붉은색 상의, 어두운 바지의 남성입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그 사람은 상당한 정황에 따른 의심스러운 용의자입니다.

그리고 당시 경찰에게 그 사람은 단순 용의자이길 넘어서 잡기만 하면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피의자로 다가왔을 겁니다.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선 경찰서에 있는 한 경찰은 그 정도 상황이면 처음부터 불심검문이 아니라 ‘체포’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불심검문과 체포는 사실상 딱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심검문은 행정적 절차이고 체포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사법절차 정도로 구분되지만 실무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현장에 있는 경찰이 판단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합리적인 확신이 있는 상황에서 눈앞에 있는 용의자를 잡는 것이 경찰의 당연한 책무가 아니냐며 되물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불심검문이니 신분증 보여주고 말로 설명하다 놓치면, 그게 더 문제 아니냐고 또 되물었습니다.
● 성매매 알선 혐의로 의심되는 용의자, 현장에서 무리하게 체포해야 했나?

 부인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성매매 알선 혐의를 가지고 있는 용의자인데, 현장에서 굳이 그렇게 체포할 필요가 있었을까? 증거를 좀 더 모아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와서 체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의심스럽다고 아무나 막 체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체포를 하려면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공권력을 집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범이나 긴급체포는 체포영장 없이도 현장에서 바로 체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매매 알선 혐의 용의자가 현행범은 아닐 겁니다. 현행범은 범죄를 했거나 한 직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긴급체포의 구성요건은 해당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우연히 발견해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할 수 있습니다.

 혐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상당수는 법정 최고 수준으로 처벌 판결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성매매알선 혐의는 단순히 성매매를 알선만 해도 법정 최고 처벌 수위가 징역 3년, 영업으로 성매매를 알선 했으면 법정 최고 처벌 수위가 징역 7년입니다. 그렇게 보면 긴급체포의 구성요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전문가는 조언했습니다.

 이 사건은 '불법 체포'가 아니라 '과잉 체포'가 논란의 핵심입니다. 불법 체포면 현행법 위반 여부만 보면 명확하지만, 과잉 체포는 주관적인 판단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공권력과 인권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공권력 집행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면 이 사건은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은 경찰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인권에 좀 더 큰 의미를 둔다면 과잉 체포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경찰의 의심만으로 영장도 없이 현장에서 꼭 체포해야만 했을까. 용의자의 신병이 확보됐으니 조금 더 증거를 모아서 영장을 가지고 와서 체포했으면 조금 더 인권을 보호하면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습니다.

 공권력은 역사 속에서 항상 인권 위에 군림했습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개선돼야 과제입니다. 공권력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에 국민의 인권보다 공권력이 우선시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강자’나 ‘악’, 그리고 인권은 ‘약자’나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선입견이 자리 잡은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리는 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쪽에 있는 접시 위에 공권력과 인권이 있는 저울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저울의 접시가 서로 같은 위치에 있고, 눈금이 중앙에 있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입니다.

 경찰은 억울하게 체포하고 이 과정에서 다치기까지 한 20대 청년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과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20대 청년도 자신을 체포한 경찰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는 이해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사건 저울의 눈금은 중앙으로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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