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최고 귀빈은 단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은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잇따라 회담했다.
열병식 전 돤먼(端門) 남쪽광장에 도착해 시 주석 내외의 영접을 받을 때는 마치 주인공처럼 맨 마지막에 등장했고, 톈안먼(天安門)에 성루에서 열병식을 지켜볼 때는 시 주석의 바로 오른편에 서는 등 줄곧 특별대우를 받았다.
시 주석도 열병식 도중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면서 광장을 향해 손짓해가며 설명을 해주기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최근 수년간 서방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신(新) 밀월관계를 과시해온 양국의 '밀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실속' 면에서도 환대를 받았는지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이번 방중 기간 기대했던 에너지나 군수 분야의 협력에서는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분석했다.
서방의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는 최근 수년간 중국과 체결한 석유·천연가스 공급 계약의 현실화가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실질적 소득은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포괄적 합의에 이르렀던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 천연가스 공급사업은 당초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중 기간 정식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국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도 러시아가 이번 열병식 기간 중국과 금융·통신 등 분야에서 300억 달러 규모의 협력협정을 맺었지만 어디까지나 '잠재적 투자'라고 꼬집었다.
경제위기를 겪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50억달러의 차관을 얻어가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자원 분야에서 23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약을 챙겨간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푸틴 대통령의 '허전한 귀국길'은 최근 에너지 가격 하락과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 최근 중국의 증시 폭락 등 불안정한 경제상황에서 비롯됐다.
이런 상황에서 현안에서 밀려나거나 답보 상태에 놓인 양국간의 굵직한 경제협력사업은 여럿 있다.
지난해 5월 정식 계약한 4천억달러 규모의 동시베리아 지역 천연가스 수출 프로젝트도 예정대로라면 2019년에 첫 공급에 들어가야 하지만 아직 수출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독립연구기관인 옥스퍼드에너지학 연구소의 조너선 스턴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체결해야 하는 계약은 이뤄지지 못했고 이미 맺은 계약도 에너지 가격 하락 때문에 다시 협상을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 모스크바를 잇는 고속철도 사업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축구대회 이전에 1단계인 모스크바-카자나 구간을 개통하기로 돼 있었으나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오나 힐 연구원은 "사업을 수주한 중국 측이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지불 능력이 없다"면서 착공도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러시아 간의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표류하면서 양국이 공유해온 전략적 이해에 한계를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양국은 과거 냉전 시대 같은 공산진영이라는 이유로 우방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노선 투쟁부터 1960년대 말 국경분쟁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온 '적(敵) 같은 동지'다.
중앙아시아 주도권을 둔 미묘한 경쟁심리,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크림반도를 병합함으로써 소수민족 독립 문제에 민감한 중국을 자극한 점 등 갈등요인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밀월관계가 성립된 것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중국이 'G2(주요2개국)' 대열에 올라서고 그런 중국에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됐기 때문인데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중국 전문가 알렉산데르 구바에프 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작고 불안한 경제적 기반에 근거한 다분히 상징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열병식 '최고 귀빈' 푸틴, 빈손 귀국…'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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