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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전승절에 생각하는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이주형의 사소하게] 전승절에 생각하는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용기와 인내와 지적인 통찰력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매우 원대한 프로젝트이다. 코헨은 세가지를 갖추었다"  (Akira Iriye, Harvard University)  

"코헨은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로 불가능에 도전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The Japan Times)


나는 책 날개나 뒷 표지에 적힌 명사(名士)들의 찬사를 그들의 명성에 걸맞을만큼 충분히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East Asia at the center; 워런 코헨 지음, 일조각, 2009)에 대한 찬사만큼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태초에 중국이 있었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기원전 2000년 전 '국가라고 부를 만한 중국 최초의 정치적 통일체'인 하(夏)왕조부터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세기 말 한반도의 상황까지 동(東)아시아의 역사를  숨가쁘게, (2000년 역사를 5백여 페이지에 담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밤잠을 희생하고 싶을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이런 통사적(通史的) 시선이 주는 지적(知的) 쾌감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후로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외교사를 전공한 미국 학자인 코헨은 한중일(韓中日) 삼국(三國)은 물론 -저자는 중일한(中日韓)으로 부르길 원할 것이다- 동남아시아까지 망라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부(富)와 권력, 안전과 명예를 추구하는 세력들의 힘겨룸이란 일관된 시선으로 그려냈다.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긴 역사를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도 이 책의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코헨은 동아시아의 제(諸) 인종, 민족, 국가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문화와 사고 방식에 대한 관심 역시 놓치지 않는데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따분한 동아시아사(史) 책이 아닌가하는 의구심 ( 책 제목을 보라)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퍼뜩 떠오른 건 바로 <자금성의 황혼> 203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중국의 거물 정치가들은 프란시스 베이컨이 추천하는 배려와 중용(中庸) -친구는 언젠가 적이 될지도 모를 사람처럼 다루고, 적은 언젠가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처럼 다루라-을 유달리 잘 실천에 옮긴다'  

바로 이런 철학이 지배해온 국제 정치외교의 세계에서 한반도에서 살아온 민족의 '존재감'은 (아주 짧은 기간의 만주(滿洲)지배가 있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 보자면 역사상 거의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라는 몇몇 정치인과 언론의 주장을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큼)  한민족(韓民族)의 운명은 대부분 중국이라는 독립 변수에 따라 심하게 출렁였다. (심지어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백년동안의 굴욕'을 겪을 때조차도)  

책의 몇몇 부분을 통해 중국이 '대대(代代)로' 한반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다뤄왔는지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후한(後漢) 광무제(AC 27~57) 때 북쪽 변경의 흉노는 강력한 세력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흉노가 강력했을 때 '중국이 흉노에게' 공물을 바쳤다) 황제는 외교적, 군사적 선동으로 흉노를 북부와 남부의 분파로 쪼개놓았다.

P.56~57
'중국은 남(南)흉노와 협력하기로 했으며 이들은 결국 한(漢)나라에 항복해 궁극적 이득이 되는 조공국의 지위를 받아들였다. 장군들은 광무제에게 북(北)흉노를 공격해 계속되는 위협을 제거할 것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거절하고 북부의 형제와 대치하고 있는 남(南)흉노에 의해 완충되는 확고한 방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전적으로 만족했다."
(2천년 전의 일이고 중국-흉노 간의 사건이지만 왠지 데쟈뷰가 느껴지지 않는가?)  
다음은 7세기 隋(수나라) 때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아마도 한반도에 성립했던 세력 중에 중국에 가장 큰 위협이자 동북아의 세력균형자 역할을 했던 국가는 고구려일 것이다.  

P.92
'수(隋) 양제의 군사적 제국주의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데, 그는 수나라가 군사적으로 우월함을 드러내고 한(漢)무제에 필적하려는 희망으로 잦은 전쟁을 일으켜 상당한 성공을 얻었으나, 결국 고구려에 대한 출정을 실패했다. 그의 아버지(수 문제)와 뒤를 잇는 다른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고대(古代) 한국의 독립을 참을 수 없었으며, 수나라의 안전에 잠재적인 위협임을 알았다.'
(이 대목에서 지난 정권의 '동북아균형자론'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금(金,여진) 그러니까 반도에서는 고려 때의 일이다.  

P.148
'1127년 宋(송나라,한족漢族)이 양쯔강을 건너 강남으로 도망할 때, 금(金)은 고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그것은 금의 조공국이 되거나 금의 침략에 맞서는 것이었다. 송의 조공국이라는 지위를 버리지 않은 채, 고려는 금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송이 요청한 군사적 도움을 주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 후 금과 고려 사이에는 거의 긴장이 없었다. 금은 송과의 남쪽 국경에 초점을 두었다. 고려는 동아시아의 주요 군사행동에서 주변에 있었다. 고려는 그 지역에서 더 이상 세력 균형의 열쇠를 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남만주 영토를 수복하려는 영토회복주의자의 희망을 완수하리라 꿈꿀 수도 없었다. 고려는 장차 동북아시아에서 그다지 중요성이 크지 않은 세력으로, 영토는 한반도에 제한되며 생존을 위해 외교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이 대목에서는 한숨과 함께, 최근 8년 동안 주(駐)중국 대사를 5번이나 바꾼 '강심장(强心臟)외교'-한 일간지의 표현-가 떠올랐다)  

서양의 외교학자 코헨의 시각과 분석이 어떤 측면에서는 일면적이고 일방적일 수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테지만 위의 몇몇 대목에서 본대로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는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운명을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재의 우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태초에 중국이 있었다'로 시작한 책은 다시 중국에 대한 얘기로 끝난다. (여전히 반도는 종속 변수일 뿐이다) 저자의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다음 세기에 중국은 자기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P.549
'누구도 중국 지도부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할 수 없으며, 중국이 공산주의 독재를 유지할지 아니면 안정된 민주주의 체제로 진화할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경우든 민족주의가 유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 확실하며...'  

P.545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강화되는 국력을 자국의 입지를 최대화하는데 이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21세기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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