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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투명 방음벽·유리벽…새들에겐 죽음의 덫

[취재파일] 투명 방음벽·유리벽…새들에겐 죽음의 덫
­● 유리벽에 충돌, 기절한 물총새 사진
 
 
이달 중순쯤 페이스 북에 물총새 한 마리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건물에 부딪쳐 기절한 모습이었는데, 새가 발견된 곳은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주한 건물로 외벽이 투명 유리벽으로 돼 있습니다. 새들의 건물 충돌사고 피해는 꾸준하게 제기돼 온 터이지만 최근에 지어진 정부청사 건물에서도 피해가 났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추가피해가 있는지 확인 작업을 벌였고, 어렵지 않게 죽은 새를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는 농림축산식품부 근처 잔디밭에서 오색딱따구리의 폐사체를 찾아냈습니다.
 유리벽 뿐 아니라 아파트 주변과 고속도로 등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도 새들에게는 큰 위협이었습니다. 대전 죽동로와 계룡로 근처 방음벽 아래에서는 텃새인 ‘어치’와 ‘참새’의 폐사체가 손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방음벽 아래 인도나 잔디밭에 죽은 채 떨어져 있었습니다.

 유리벽과 투명 방음벽에 비친 하늘과 나무 모습은 실물처럼 보여 새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심코 하늘을 날아가다 유리벽과 투명 방음벽에 부딪쳐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새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틀간 5곳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죽은 새는 20여 마리, 습하고 더운 날씨에 이미 부패돼 깃털만 남은 것들도 꽤 있었습니다.
● 새들이 죽어가지만…피해 규모도 몰라

 전국적인 피해 실태가 궁금했습니다. 불행히도 국내 유리벽과 투명 방음벽의 야생조류 충돌사고 자료는 없었습니다. 다만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가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전남 신안군 홍도에서 조사한 결과 구조되거나 폐사체로 발견된 철새 256마리 중 34.8%인 89마리가 유리창 등 인공구조물과의 충돌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환경부의 야생동물 구조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전국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은 8천877마리이고, 충돌사고로 인한 피해는 17.8%인 1천583마리에 이릅니다. 이 조사 결과는 조류뿐 아니라 포유류, 파충류 등 말 그대로 야생동물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죽은 동물은 조사하지 않은데다 사고당한 곳의 유리벽과 투명 방음벽에 대한 구분도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전국 야생조류의 투명 방음벽과 유리벽 충돌 피해 규모를 알 수가 없고, 어렴풋하게 추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야생조류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은 버드세이버입니다. 독수리 등 맹금류의 모양으로 된 스티커를 말하는데,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에 붙이면 새들이 무서워하거나 비행 중 장애물로 여겨 피해간다는데 착안한 것입니다.

 버드세이버 부착 사업은 지난 2009년 환경부가 아닌 문화재청이 시작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새들의 충돌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입니다. 매년 버드세이버 스티커 5천장을 제작해 조류보호협회를 통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버드세이버를 부착한 투명 방음벽과 유리벽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완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법적규정도 없어…대책 서둘러야

 취재결과 맹금류 스티커를 부착한 방음벽에서도 숫자는 줄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야생조류의 충돌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스티커 부착 간격이 너무 길어서 효과를 못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10cm~20cm 간격으로 촘촘하게 붙여야 하는데 미관을 이유로 보통 2m~3m 가량 띄어서 붙여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제도적으로 버드세이버 부착 관련 강제규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그나마 건설행위자들의 참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버드세이버에 의존만 할 게 아니라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조류 충돌을 예방할 다양한 디자인과 보호장치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야생조류의 충돌 사고를 막을 실효성있는 대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게 피해 실태에 대한 조사입니다. 지역별, 건물 유형별, 방음벽 형태별, 피해조류에 대한 상세한 현장 연구가 필요합니다. 야생동물 관리와 보존에 책임이 있는 환경부가 나서야 합니다.

 천연기념물 희귀새를 보호하겠다며 6년 전부터 문화재청이 버드세이버 부착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환경부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환경당국의 무관심이 길어질수록 야생조류의 억울한 죽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죽음의 덫에서 새들을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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