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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집트 反테러법의 두 얼굴'

[월드리포트] '이집트 反테러법의 두 얼굴'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5.09.02 16:57 수정 2015.09.04 15: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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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정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집트에 사는 교민에게 물어보면 많은 분이 "2011년 시민혁명 이후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를 더 붙입니다. "근데 자꾸 폭탄이 터져서…그렇죠."

지난 해 여름 군사 쿠데타로 무르시 전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최고조에 달했던 이집트 정치불안은 엘시시 대통령의 중앙집권적 권력아래 서서히 안정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나이 반도부터 시작되는 이슬람 과격세력 (이제는 ‘시나이 지방’ 이라는 IS 지부가 됐습니다.)의 무력행위입니다.

이슬람 정권을 몰아낸 데 반발한 이슬람 과격세력이 시나이 반도를 기점으로 무장활동을 시작했고 이제는 IS의 이집트 지부로 자리를 굳혀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나이산을 중심으로 그 북쪽은 과연 정치적으로 이집트 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불안과 혼란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 이집트 검찰총장을 노린 차량폭탄 현장

갈수록 강해지고 가까워지는 위협 시나이 반도에선 군과 경찰을 노린 무장세력의 공격과 테러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정부 역시 탱크와 헬기까지 동원해 소탕작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니아반도는 과연 안전하냐고 물으면 이집트 정부는 늘 한결 같은 대답입니다. "이집트 군경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제가 느끼는 테러의 위협은 좀 다릅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더 강해지면서 더 가까이 오는 느낌입니다. 지난 6월 30일 이집트 검찰총장이 출근길에서 차량폭탄 공격으로 숨졌습니다. 이어서 카이로 도심의 이탈리아 영사관에서 폭탄을 실은 차량이 폭발했습니다.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습니다.

지난달 20일에는 카이로 북부에 있는 국가보안부의 지국 건물이 또 폭탄 공격을 받았습니다. 새벽이었는데도 29명이 다쳤습니다. 사실 폭탄이 터지는 일은 엘시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늘 있었던 일입니다. 그 동안은 카이로 도심에서 터진 폭발물은 대부분이 사제 급조폭발물로 위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 대상도 정부청사나 군경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피해도 인근에 있는 2~3명 정도 선에서 그친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 이집트 국가보안부 테러 현장

이탈리아 영사관과 국가보안부의 폭발 현장을 다 가봤는데 이전과는 규모 면에서 다르더군요. 이탈리아 영사관의 경우는 정문이 완전히 박살 나고 일부 벽이 구멍이 뚫리고 철제구조물이 다 튕겨 나갈 정도로 위력이 셌습니다. 국가보안부 폭발 현장은 더 위력이 컸습니다. 폭탄차량이 주차된 자리는 아스팔트가 내려앉아 3미터 깊이로 웅덩이가 파였습니다.

5층 건물의 모든 유리창이 깨진 것은 물론 유리창이 있던 벽면도 허물어졌습니다. 차량이 폭발했던 담벼락 역시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시멘트로 만든 초소는 반이 잘려나가 50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갔더군요. 모두 새벽이나 밤에 터졌으니 피해가 이 정도에서 머물렀지, 만약 대낮에 터졌다면 정말 끔찍한 피해가 벌어졌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 특단의 칼, 반 테러법

테러의 위협과 정도가 커질수록 경제 재건을 꿈꾸는 이집트 정부의 고심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관광수입도 타격을 받을테고 해외에서는 투자를 망설일 테니까요. 이집트 정부는 한층 강경한 대응을 택했습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방식, 그래서 만든 게 ‘反테러법’입니다.

법의 취지는 간단합니다. 테러를 저지른 자, 감당한 자, 주도한 자, 선동한 자, 지원한 자를 더 엄하게 처벌해서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겁니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엘시시 대통령이 지난 6월 검찰총장 암살 사건 이후 공약한 지 2개월만에 법안을 승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이 ‘악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시민단체 뿐 아니라 언론단체에서도 오히려 ‘공권력을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국 안정을 빌미로 시위와 집회를 차단하고 반정부 성향의 인사를 탄압하고 정부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겁니다. 도대체 ‘반테러법’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논란이 일고 있는 걸까요?

● 광범위한 '테러리즘'

반대론자가 가장 먼저 지적하는 건 ‘테러리즘’에 대한 규정입니다. 반테러법 1조항에는 테러리즘을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모든 행위’로 규정했는데 여기서 ‘모든’ 표현이 너무 모호하고 넓다는 거죠.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위협이나 협박, 선동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반정부 시위나 집회도 보는 시각에 따라 ‘테러리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 군경에겐 관대한 법 적용

반테러법은 군경이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울 때 훨씬 자유로운 무력사용권을 보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또한, 테러리스트와 진압, 교전 과정에서 불법으로 무력을 사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군경에게는 특별보호법이 적용됩니다. 당연히 공권력 남용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카이로 동부 나사르시티의 한 주택을 이집트 대테러부대 습격해 용의자 여러 명을 사살했습니다. 용의자들은 모두 비무장상태였습니다. 용의자들은 한 대학교수와 그의 일가족이었습니다. 새로운 반테러법에 따르면 진압에 나선 대테러부대는 긴급 상황에서 무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행위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 테러조직 설립. 지도자는 최대 사형

이 조항에서 논란이 되는 건 ‘시기’에 대한 표현이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좋은 뜻으로 단체를 세웠는데 그 사람이 손을 뗀 뒤에 그 조직이 테러단체로 변질 됐다면 그 설립자는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아닐까요? 또, 어느 단체의 구성원이나 지도자가 테러혐의로 체포되기 전에 그 단체가 테러조직으로 간주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형량차이가 달라지는지도 모호합니다.

● 무슬림 형제단 죽이기?

반테러법에 따르면 테러조직에 가담한 자는 최대 징역 10년, 테러조직에 자금을 댄 자는 징역 25년에서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무르시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은 경우 엘시시 정부로부터 ‘테러조직’으로 규정된 상태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이 테러를 저질렀든 아니든 간에 무슬림 형제단에 기부를 한 자나 단체는 물론 가입을 했던 이들도 모두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평화적 운동가라고 반박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입장에선 가혹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 언론 길들이기

반테러법에서 가장 문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두 가지 조항인데, 테러조직을 겨냥한 군사작전이나 테러 행위에 관한 보도시 정부의 발표와 다른 수치나 내용을 보도하면 최소 20만 이집트 파운드(약 3천만 원)에서 최고 50만 이집트 파운드(약 7천6백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원래는 2년 이상의 징역형이었는데 워낙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벌금형으로 바꾼 겁니다.) 또 하나는 인터넷을 포함해서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에 대해선 징역 5년에서 7년형이 내려집니다.

‘정부 발표와 다른 수치나 내용’ 부분을 그저 ‘옳게 적고 보도하면 될 일이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정부 발표가 틀렸거나 정부가 숨기는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바른 보도이고 정확한 수치지만 정부의 주장과 다르다고 벌금을 맞아야 한다면요? 정부가 감추면 언론도 감춰야하고 정부가 틀리면 언론도 틀려야 한다는 거죠. 꼭두각시랑 다를 게 없겠죠?

더구나 수 천만 원이란 돈은 저뿐 아니라 절대 다수의 이집트 기자가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액수입니다. 이집트는 대부분이 영세한 민간 언론사입니다. 기자들은 한 달에 고작 수십만 원의 급여를 받습니다. 도저히 낼 수 없는 막대한 벌금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폐쇄하고 주요 언론사는 손아귀에 넣고 길들이려는 조치라고 비판합니다.

폭력 선동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까지를 테러에 관련된 폭력 선동행위로 볼 것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시위나 집회를 주동하는 것을 물론 시위대의 주장에 편향된 기사나 보도를 하나 것도 반테러법의 시각에선 역시 선동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반테러법 반대론자들은 우려합니다.

엘시시 정부가 집권한 이후 이집트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무르시 전 대통령시절보다 훨씬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여기에 반테러법은 위축되고 억압된 지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법이라는 게 반테러법 반대론의 주된 의견입니다.

반테러법이 승인된 지 한 달도 안 됐기 때문인지 아직 해당 법이 적용된 사례는 없습니다. 때문에 반테러법의 실제적 문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란 쓰임새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똑 같은 법조항이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반테러법이 이집트를 테러 위협에서 지켜줄 특효약이 될지, 아니면 독재권력을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사슬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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