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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렵게 용기낸 제보자에게 "일기에 쓰세요"라니…

[취재파일] 어렵게 용기낸 제보자에게 "일기에 쓰세요"라니…
지난해 국내 개봉작 ‘제보자(2014, 감독:임순례)’는 말 그대로 '제보자'에서 시작돼 '제보자'로 끝나는 내용이다. 영화는 (조직 입장에선) 절대 발설해선 안 될 정보를 외부로 옮기기까지, 해당 제보자가 겪는 마음고생 같은 것들을 잘 그려냈다.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뿌리치고 제보자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본인 뿐 아니라 가족까지 위협해 오는 거대 권력 앞에 무너질 때도 있지만, 그가 초심을 지켜낸 건 결국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정의감 덕분이었다.

드라마틱한 영화에서와 달리, 사회부 기자들에게 ‘제보자’는 좀 다른 어감일 때가 많다. 순서를 정해 회사에 들어와 휴일 근무나 내근 직을 하는 날이 있는데, 그럴 때면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함께 직접 제보 전화를 받기 때문이다. 

뉴스 앞뒤, 혹은 진행 중 자막으로 고지되는 번호로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요즘은 메일이나 모바일 앱을 통한 경로도 있지만 여전히 전화로 제보를 주시는 분들이 많다. “거기 SBS 제보하는 데 맞죠?”로 시작되는 통화는, 짧게는 1~2분 안에 끝나는데 10분, 20분을 넘길 때도 있다.

방금 일어난 화재나 교통사고 같은, 속보성 제보가 아니고서야 통화가 길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라면 제보자는 누구보다 해당 사안에 대해 깊게 고민한 상태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법령을 뒤져보거나 지금까지 나왔던 기사를 찾아 스크랩한 뒤 제보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들어보고 관심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비밀스럽게 공유돼야 하는 내용인데 내 신원 정보나 목소리를 녹음해서 상대에게 넘기면 어떡하지?’ 처럼 신경 쓸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계심에 통화 내내 ‘지금 녹음하고 있는 거 아니죠’ 확인하는 분도 있고, 통화를 끝내기 전 추가 취재 상황을 대비해 성함과 연락처를 여쭤볼 때 ‘어디에다 말하려는 건가요? 물으시는 분도 있다.

이렇듯 통화 한 번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는 제보자와 달리, 전화를 받는 기자 입장은 또 다르다. 어제 우연히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내가 방송사 기자를 하고 있다고 말하니 그 친구가 모 언론사에 제보 전화를 걸었던 경험을 들려줬다. 며칠 밤을 고민해 전화를 걸었는데 앞부분을 잠깐 듣더니 기자가 '그런 게 기사가 되겠어요, 일기에 쓰세요'하고 끊더라는 거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기자가 너무한 감이 있지만, 실제 수많은 제보가 모두 다 기사거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러 발생 뉴스를 챙기면서 시시각각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노라면, 전화를 거는 제보자와 받는 기자 간에 온도차가 발생한다는 걸 느낀다. 감정적으로 격정적인 상태의 제보자와는 달리, 기자는 사무적이고 이성적이다. 몇몇 동료 기자가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제보자라면 열불 나겠다’ 싶을 정도로 침착하다고 느낄 때도 몇번 있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대학생 시절, 나 역시 모 방송사에 제보를 한 적이 있다. 직접 억울하거나 황당한 일을 겪은 건 아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건 반드시 개선돼야 할 일이구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관련 정부기관을 찾기엔, 신뢰도 부족하고 뭔가 세상에 더 널리 알려져 모두가 ‘공분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 같다. 수많은 고민 끝에 말할 내용을 정리해 기승전결을 갖추고 나름 제목도 뽑았다. TV에나 나오는 기자와 통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댔다.(기자를 준비하고 있었던 때라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전화를 받은 기자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역시나) 몹시 침착했다. 해당 사안이 알려진 적 없어, 내 설명을 듣고 처음 알았을 텐데 질문 몇 개 던지더니 금세 어떤 상황인 건지, 내가 무엇을 문제로 인식한 건지 이해해 내는 눈치였다. 굉장히 논리적이었다.

통화가 거의 끝나 가는데 기자가 그렇게 구미 당기지 않아 하기에, 더더욱 이게 왜 문제인지 난 달아올라 애걸복걸 설명해야 했다. 일순간 입장이 바뀌어 ‘제보자-기자’가 아닌 ‘판매자-구매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고, 제보 내용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가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자가 내 말을 충분히 알아먹었던 것인가, 내 설명이 부족하진 않았나, 돌아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난 기자가 된 후, 제보자와 통화할 일이 생길 때면 '아' 나 '네,네' 같은 추임새, 혹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지금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요’ 같은 리액션을 많이 하는 편이다. 기자와 통화하는 동안 제보자가 조마조마할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통화를 급하게 끊는 경우도 많다. 또, 기자가 흥미를 느끼며 열심히 들었는데 기사화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또 그대로 제보자에게 새로운 미스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상당수 언론 보도가 개개인의 시민의식, 정의감에 기대 이뤄지고 있다. 실제 사회를 바꿔낸 많은 기사들이 제보에서 비롯됐다. 기자가 아무리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한들, 어느 지역사회, 어느 조직 내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모두 알아낼 것인가.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렇듯 시민 제보의 소중함과 감사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SBS 보도국으로 걸려오는 제보 전화는 철저히 신원이 보장되고, 취재기자에게 누락 없이 잘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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