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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성로 영장기각, 법원의 '재 뿌리기' ①

[취재파일] 배성로 영장기각, 법원의 '재 뿌리기' ①
 배성로 동양종합건설 전 회장의 구속영장이 지난 주 기각됐습니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의 기각 사유를 먼저 보시겠습니다.

 "제출된 수사자료와 혐의사실을 다투고 있는 피의자의 변소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고,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움"

배성로 전 회장의 혐의는 7개 정도 됩니다. 포스코 수사의 핵심인물로 지목됐기 때문인지 배 전 회장에게 혐의를 7개나 적용한 걸 보면 검찰이 아마도 수사를 다부지게 한 모양입니다. 검찰이 수사의 1차 목표로 지목한 정준양 포스코그룹 전 회장과 정동화 포스코건설 전 부회장의 연결고리로 배 전 회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장은 기각됐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가 워낙 많아서 법원이 영장검토만 20시간 넘게 했다는데 영장전담판사의 기각사유를 곱씹어보면 검찰의 제출한 수많은 자료도 피의자를 구속할 만한 사유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검찰은 어떤 자료를 제출했길래 법원은 구속이 안된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취재내용을 토대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1. "정준양, 3천억 공사 배성로 전 회장에게 몰아주라고 지시"

배성로 전 회장이 대주주인 동양종합건설은 지난 2009년 회사 매출액이 600억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정준양 포스코그룹 회장이 취임한 직후 동양종합건설은 포스코의 인도제철소를 비롯해 포스코그룹의 3천억원 규모의 해외 하청공사를 수주할 기회를 잡게 됩니다.

매출 600억원 규모의 회사가 3천억원 짜리 공사를 수주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건설업체라는게 회사 규모와 시공경험에 따라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공사를 담당하게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마이너리그 싱글A에서 불펜투수 하던 유망주가 메이저리그에서 2선발로 승격된 경웁니다. 실력과 재능이 있다면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의 고위 임원의 A씨의 진술을 확보합니다. 정준양 당시 회장이 설계와 설비 능력이 전무한 동양종합건설에 3천억원대 공사를 몰아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정 전 회장의 말을 A씨에게 전달한 임원 B씨에게도 검찰은 동일한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현지에서 공사를 담당한 임직원들은 손사래를 치고 반대했지만 막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배성로 전 회장은 포스코 내부의 최고 실력자였기 때문이라는게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은 포스코 내부자들의 일관된 진술입니다. 대법원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검찰의 조서를 증거로 인정한 걸 보면 포스코건설 임원들의 진술 역시 증거능력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특수수사, 특히 기업비리 수사의 정점에는 최종 결정권자가 있습니다. 내부의 구조적인 비리, 석연치 않은 거래가 이뤄지는 배경에는 회장이던 사장이던 최종 결정권자의 결제와 승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건 사회통념상 이치에 맞는 얘깁니다. 책임을 두려워하는 건 임원들 뿐만 아니라 조직구성원 누구든 매한가지입니다. 나중에 내부 감찰에서 문제가 생길수도 있죠. 정점의 실력자의 지시나 묵인같은 확실한 '빽'이 있어야 비상식적인 계약도 가능한 겁니다. 회장이 시켰다는 면피를 해야하는 것이죠.
자, 포스코 수사의 본류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정준양 전 회장이 지시했다는 진술은 검찰 수사에서 처음 나온 얘깁니다. 이른바 포스코 비리의 근원에 검찰이 한 발 더 접근한 것이죠. 수사에 종착지가 나온 겁니다. 포스코 수사에서 현재까지 임직원을 포함해 모두 17명이 구속됐습니다. 단일사건으로 보자면 최대 규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청업체로부터 뒷돈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석연치 않은 청탁으로 구속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포스코 비리가 피라미드 구조의 먹이사슬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죠.

그리고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정준양 전 회장이 내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권을 주라고 사실상 압력을 넣었다는 것 아닙니까?  비리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선 정준양 전 회장의 검찰 소환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어짜피 소환할거라면 실체적 진실은 밝혀야죠. 그렇다면 정준양 전 회장과 배성로 전 회장의 동양종합건설간의 밀월관계도 파헤쳐야 합니다. 정준양 전 회장이 거론된 동양종합건설 수사는 포스코 수사의 본류중의 본류이기 때문입니다.

배성로 전 회장은 자신은 정준양 전 회장과 친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왜 포스코 임원들은 배성로 전 회장을 최고 실력자로 지목하고 있는지, 혹시 배 전 회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정준양 전 회장과 연결되는 다른 유력인사와 친분이 있는지 규명돼야 하는 부분입니다. 수사의 본류이자 중대한 구속필요사유로보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배성로 전 회장의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그럼 다른 혐의는 어떤지 다시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2. 포스코건설 임원 "배성로 전 회장에게 5천만원 받았다."

1번에서 정준양 전 회장이 동양종합건설에 3천억원 규모의 공사를 몰아주라는 지시를 받은 A임원을 언급했습니다. 동양종건이 시공능력이 떨어진다고 줄곧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자 그런데 검찰이 2011년 수천만원의 액수가 적힌 의문의 수첩을 확보했습니다. 검찰은 단서를 토대로 A 임원을 추궁했고 A임원은 지난주 배성로 전 회장에게 5천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또 다른 물증과 진술입니다. 사실이라면 배 전 회장은 공사수주를 댓가로 관계자에게 금품을 준 게 됩니다. 전형적인 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연치 않은 계약이나 거래 만으로는 사실 유죄입증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뒷거래를 찾기 위해 계좌추적을 하고 진술확보에 사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배 전 회장은 돈을 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돈을 줬다면 무슨 명목이었는지 실체적 진술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포스코 임원들은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만으로도 구속된 전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구속필요사유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에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짧게 적었습니다.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이긴 합니다만 아마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럼 배 전 회장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3. 동양종건, 올 4월 컴퓨터 전량 교체...이유는?

동양종합건설은 지난해 11월과 12월쯤 직원용 컴퓨터가 오래되서 잔고장이 많아 교체해달라는 내부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컴퓨터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4월 갑자기 회사 전체 컴퓨터를 전부 교체합니다. 직원들의 요구를 반년뒤 회사가 수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점이 석연치는 않습니다. 올해 3월 26일 SBS는 검찰이 배성로 전 회장을 출국금지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컴퓨터 교체는 보도 직후 이뤄진 셈입니다. 통상적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은 회사용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사하는 게 기본입니다. 몇년치 재무회계자료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내부 자료를 분석해서 분식회계, 배임, 횡령을 잡아냅니다. 수사에 필요한 자료가 보도 직후 사라진 셈입니다. 또 검찰이 확보한 동양종건 내부 문건을 보면 회장님 지시라며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비해서 잘 정리해놓으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증거인멸 시도 역시 중대한 구속필요사유입니다.

속담처럼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는 것인데 제가 의심이 많아서 괜한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도 법원은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4. "포항세무서. 동양종건에 검찰 요청 자료 흘렸다"

동양종합건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이 경북 포항지역입니다. 포스코그룹 사업권을 많이 수주받았으니까요. 검찰은 통상적으로 기업수사를 할 때 관할 세무서에서 기업 관련 자료를 받아 분석합니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기관끼리 보안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에서 이상한 점이 포착됐습니다. 포항세무서의 한 직원이 동양종합건설쪽 모 관계자에게 검찰에서 동양종건 매입매출자료 문의가 와서 자료를 넘겼다고 얘기를 해 줍니다. 심지어 담당 검사와 수사관이 누군지 까지도 말입니다. 해당 세무서 직원은 검찰에서 소환조사도 받았습니다 . "동양종건의 모 관계자가 검찰에서 물어보면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평소 의형제처럼 지내는 분이라서 얘기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그 동양종건 직원은 국세청에 제출한 매입매출자료를 검찰이 확보했다는 정보를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을까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기밀누설은 증거인멸보다 더 나쁜 범죄입니다. 누설된 기밀은 증거를 인멸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4번째 구속필요사유입니다.

법원은 이런 상황에서도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5. "동양종건. '5천만원 수수' A임원과 말맞추기 했다."

2번에서 언급했던 A임원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A임원이 배성로 전 회장에게 5천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다음날 검찰은 당초 배성로 전 회장을 소환 조사하려고 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유력 언론사를 갖고 있는 배 전 회장의 정보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검찰이 배 전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A임원의 진술을 히든카드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오후 2시쯤 출석하겠다는 배 전 회장은 돌연 출석 직전 병원에 가야한다며 검찰 소환을 미뤘다고 합니다.
석연치가 않아서 검찰이 A임원을 다시 물어봤더니 A 임원은 그제서야 동양종건에서 연락이 와  검찰에서 무슨 진술을 했는지 전부 실토했다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배성로 전 회장이 포스코그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실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포스코의 누가 검찰 조사를 받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추궁하고 확인할 만큼 배 전 회장 측은 용의주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A 임원의 진술과 증거는 오염됐습니다. 증거인멸 우려보다 더 나쁜 건 증거오염입니다.
다섯번째 구속필요사유입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여전히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혹 법원이 다른 피의자들과는 다르게 유독 배성로 전 회장의 방어권만을 과도하게 보장하는 것은 아니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구속필요 사유를 충족하는 단서는 적지 않아 보입니다. 포스코그룹 최고 수뇌부가 연루된 진술도 확보돼 있고, 동양종합건설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한 두개가 아닙니다.

불구속 수사 원칙 좋습니다. 그러나 '성완종리스트' 수사 당시 경남기업의 故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 2명은 증거인멸 혐의 만으로 긴급체포돼 구속됐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포스코 수사과정에서 돈을 주고 받은 혐의 만으로도 구속된 사례는 많습니다. 포스코 수사에서 유독 정점에 있는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과 배성로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만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유독 강한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법원이 생각하는 스트라이크존이 유독 비좁은 것만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검찰이 배 전 회장에게 적시한 혐의는 7개입니다. 이제 겨우 2개의 혐의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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