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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피소는 텅 비었는데…"36명 계십니다"

[취재파일] 대피소는 텅 비었는데…"36명 계십니다"
 어제(25일) 나흘간 이어진 남북 고위 접촉이 끝나자, 엿새 동안 이어진 연천군 주민들의 대피소 생활도 마무리됐습니다. 처음 주민들이 대피소로 들어가는 모습과 거의 일주일이 다 돼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TV 속에서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소개되고 남북의 정책결정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보도되는 그 시간에, 늘 하던 농사와 집안일을 하던 주민들이 얼마나 고된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생생히 느꼈습니다.
 
 연천군 삼곶리 주민들이 대피했던 첫날밤이었습니다. 한 할머니께서는 "급하게 나오느라 약을 못 먹고 왔다"며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길을 나섰습니다. 무게를 못 이겨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머리에는 봇짐을 한 가득 이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설득해 봇짐은 대피소에 두고 집에만 다녀오기로 하고 할머니, 하지만 불과 2~3분이 흘렀을까. 면사무소에서는 "실제 경보입니다. 북한의 공습이 있을 수도 있으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습니다.

 인근 군부대에서 대북방송을 재개해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방송한 건데, 처음 겪는 일에 기자들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우왕좌왕 했습니다. 어두컴컴하기만 한 길을 걸어갔을 그 할머니께서도 곧장 돌아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을 드시기는 한 건지는 미처 여쭙지 못 했습니다.
 
 협상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도발이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만에 하나 북한의 도발이 또다시 있을 경우, 이곳 주민들은 고된 대피소 생활을 다시 해야 합니다. 혹시 모를 그 일을 위해서, 대피소 운영은 분명 개선돼야 합니다.

● "서른여섯 명 계십니다."

 그제 경기도 연천군에 내려진 대피령으로 삼곶리 대피소에 주민들이 몇 분이나 계신지 묻는 말에 경기도 상황실에서 답한 말입니다. 이 36명이라는 숫자는 아침 여섯 시부터 낮 3시가 되도록 변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실의 말대로라면 주민들 36명은 모두 대피소에 남아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농사일을 두고 마냥 대피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하나둘씩 자리를 뜹니다. 계속 해서 주민들은 대피소를 드나들었고, 실제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대피소에 남아있는지 알기 위해 물어도, 경기도 상황실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두어 분 계세요."

 그러던 중 대피소에 들어갔다 온 통신설비 업체 직원이 한 얘깁니다. 이 말을 듣고 다시 경기도에 물어봐도, "서른여섯 명이요."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입니다. 주민들이 댁으로 돌아가시기도 하니, 정확한 인원을 파악해달라고 하는데도, "우리들은 36명으로 알고 있다."는 말만 되돌아올 뿐입니다.

 연천군에는 어제 새벽 3시 10분쯤에서야 대피령이 해제됐습니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새벽 1시쯤 전에는, 혹시나 결렬돼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때였습니다. 게다가 지난 20일 북한군이 쏜 14.5mm 고사포가 떨어진 곳도 바로 이곳 연천군이었습니다.

 당시 남북 간 회담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북한의 잠수함이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이 들리고, 미국의 최신 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는 뉴스가 TV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평소 대화를 제의하는 와중에 위기상황을 조장해왔던 것을 보면 오히려 더욱 긴장했어야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때 그 순간 북한이 연천군으로 도발을 감행했다면, 서른세 명의 주민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도대체 누가 알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인원과 장비를 동원해서 주민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대피했던 주민들을 부랴부랴 모으더라도, 몇 명의 주민을 더 찾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겁니다.

●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연천군 중면 삼곶리 마을 대피소는 중면 면사무소 마당에 있습니다. 면사무소 본 건물에서 나와 10미터만 걸어가면 대피소에 갈 수 있고, 몇 분이 계신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농사와 집안일 등으로 자리를 비우고, 때때로 답답함을 못 이겨 밖으로 나와 실시간으로 대피인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파악해 놓은 숫자로 몇 시간씩 버티는 것은 최소한의 노력을 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피소에서 10미터 떨어진 본관에 있던 직원들은 "경기도 쪽으로 언론 창구가 일원화 됐으니 그 쪽에 알아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고, 경기도는 "아래에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어쩔 수 없다. 36명이다."는 말만 계속 했습니다. 사실과 다르니 다시 확인하라고 해 파악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도 경기도는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습니다.
 
● '어쩔 수 없던 일'과 '할 수 있었던 일'

 대피령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군에서 상황을 파악해 대피하라고 하는 것이지만, 주민들을 억지로 대피소로 이동하게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낮에는 농사나 집안일을 위해 대피소를 비우는 일이 많습니다. 북한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그렇다고 한 해 농사를 그냥 망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밤에도 마찬가집니다. 뒤늦게라도 에어컨이나 TV 등 편의시설이 갖춰졌다고는 하지만, 지하 대피소는 물난리 난 지하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습했습니다. 잠을 이루기 힘든 상황이라, 밤에도 주민들은 면사무소 주변으로 바람을 쐬러 나오곤 했습니다. 당연히 실시간으로 대피 인원을 파악하지 못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던 일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대피소에 누가 얼마나 남아있는 지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주민들이 어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러 들어가 보기만 했어도 그 숫자는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피소에 주민들이 가장 많이 있었을 때가 70명 수준이었습니다. 수많은 주민들이 대피소를 드나들고, 밭 일 때문에 대피소에 두어 명만 남기도 한 그 예닐곱 시간 동안, 주민 수에 대한 통계를 알지 못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던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하지 않은 일입니다.
 
 갑작스런 북한군의 도발에 경기도 관계 직원들은 가장 바쁜 엿새를 보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빠야 했던 것은 주민들의 안전 때문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주민 안전 도모'의 가장 기초적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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