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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톈진 수습 '갈 길은 까마득한데 비는 오고'

[월드리포트] 톈진 수습 '갈 길은 까마득한데 비는 오고'
톈진의 대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바로 다음날 중국의 한 화학물질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중국판 방사능 유출 사고네요."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려고 심하게 과장한다 싶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시작된 방사능 공포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입니다. 후쿠시마 원전과 주변 지역은 '죽음의 땅'이 됐고 언제 다시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화학물질 창고가 폭발하고 독극 물질이 좀 퍼졌기로서니 방사능 유출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고 발생 일주일이 훌쩍 넘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앞서 소개한 발언이 이해가 됩니다. 방사능 유출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필적하는 재앙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분명합니다. 비유하건데 일본 후쿠시마가 원자탄을 맞았다면 중국 톈진은 화학탄을 맞은 셈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 피해는 치명적입니다. 원상회복은 난망입니다.

중국 당국은 당시 사고 창고에 보관됐던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일주일 만에야 겨우 파악했습니다. 40종에 무려 3천 톤에 달합니다. 규정된 적재 총량을 수십 배 초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부분이 극히 위험한 물질입니다. 중국 당국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산화물입니다. 질산암모늄이 8백 톤, 질산칼륨이 5백 톤으로 모두 1천3백 톤에 이릅니다. 두 물질은 폭약의 원료로도 쓰일 만큼 폭발성이 큽니다. 당연히 극히 위험합니다. 두 번째는 인화성 금속물질입니다. 솔리듐, 마그네슘 등이 5백 톤 있었습니다. 인화성인 만큼 불에 잘 탑니다. 세 번째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시안화나트륨 7백 톤이 대표적이고 그 외의 종류로 수백 톤이 있습니다.
사고대책반측은 폭발로 현장 표면에 노출된 시안화나트륨 1백50 톤을 수거해 공장으로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솔리듐 등 인화성 금속물질은 폭발과 그에 따른 화재로 모두 소각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사고 현장에는 아직 2천 톤 가까운 위험 물질이 남아있습니다. 모두 물에 닿으면 폭발할 가능성이 크거나(산화물), 산성비와 반응해 맹독성 가스를 내뿜을 수 있거나(시안화나트륨), 상호 작용과 반응으로 어떤 독성 물질을 내뿜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물질들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신속하게 사고 현장에서 이들 물질을 수거해 적정한 처리를 거쳐 제거해야 합니다. 이번 사고 수습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당국도 이에 따라 이미 두 단계의 계획을 짜서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1단계는 컨테이너 속 물질의 유무, 물질의 독성 정도를 파악하고 분류해서 표시를 해두는 것입니다. 2단계는 이 표시에 따라 중장비를 동원해서 해당 물질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제거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참 쉽습니다.

그런데 이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법'과 같습니다. 막상 실행을 하려면 엄청난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재 사고 현장에는 수백 명의 군 화학전 부대와 화학물질 전문가들이 투입됐습니다. 대다수의 화학전 부대원들은 우선 사고 현장 외부에 노출된 맹독성 물질을 제거하는데 총력을 쏟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런 물질들이 바람이나 비로 인해 서로 섞이고 반응하고 변형되면 어떤 독성 물질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장비를 투입할 경우 화학물질이 비산할 가능성이 커 그 전에 인체에 유해하지 않도록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경 3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지역을, 그것도 수천 개의 컨테이너와 건물 파편, 각종 물질 잔해로 뒤덮여 있는 상황에서 철저히 제독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습니다. 화학전 부대원들이 필사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언제 완수할 수 있을지 한숨만 나옵니다.



또 다른 일부 화학전 부대원들과 화학물질 전문가들은 혼성조를 이뤄 컨테이너 분류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들은 비어 있는 컨테이너에는 숫자 '1'을, 독성이 없는 물질을 보관한 컨테이너에는 '2'를, 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컨테이너에는 '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 또한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겹겹이 쌓여있고 뒤엉킨 컨테이너를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은 끈기와 인내로 극복을 한다 칩시다. 물질의 포장을 통해 내용 성분을 쉽게 알 수 있으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분을 바로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해당 물질의 샘플을 수거해 시설이 있는 곳까지 가져온 뒤 실험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그나마 컨테이너 바깥쪽에 있는 물질은 이런 작업을 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컨테이너 내부 깊숙이 들어있는 물질들입니다. 독성 위험 때문에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극히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질을 어떻게 채취해 성분 확인을 할 수 있을지 아직도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방독면과 전신 방호복을 입은 현장 요원들은 오래 일할 수 없습니다. 이런 폭염 속에서 공기도 통하지 않는 옷을 입고 몇 시간만 일하면 심각한 열사병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모두 바로 철수해야 합니다. 추가 폭발이나 독성 물질의 유출 위험 등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비가 많은 여름철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고니가 중국 황해로 바짝 다가서고 있습니다. 다행히 본토에 상륙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보됐지만 꽤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칫 2차 피해를 유발할까 초조하게 만듭니다. '일모도원', 갈 길은 멀었는데 해는 저문다는 오자서의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갈 길은 멀었는데 비가 오는 격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든 작업이 끝나려면 하세월입니다. 그 사이에 맹독성 공기나 하수, 토양이 유출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톈진 주민들은 얼마나 오래 불안감에 떨어야 할 지 모릅니다. 사고 지역 주민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주민들은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시 정부가 자신들의 집을 되사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환경 사고가 그렇습니다. 일어나고 나면 우리의 방비와 대처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탄식하게 됩니다. 원상복구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어떤 부작용이 숨어있다 갑자기 튀어나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하고 나서 후회하며 끔찍한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예방하고 대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노력이 비교할 수 없이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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