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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수천 톤의 위험물질 관리는 없었다

[월드리포트] 수천 톤의 위험물질 관리는 없었다
중국은 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그 규모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불안해서 중국에 어떻게 사니?"

하지만 대한민국과 비교해 국토 면적이 96배, 인구수가 28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달리 생각됩니다. 사건, 사고의 발생 건수나 피해가 우리의 28배에서 96배인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앞서의 질문에 보통 이렇게 답합니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 그런 것이지 나름 관리가 잘 돼요."

하지만 이번 톈진 폭발 사고는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중국 후진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제도와 관리, 운용으로 지금까지 대형사고 없이 지낸 것이 오히려 용하다 싶을 지경입니다. 사고 전 상황부터 발생, 진화, 수습까지 말 그대로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대표적인 것만 짚어보죠.

● "위험물질 종류와 양? 아무도 몰라요."

문제가 발생한 창고는 각종 위험한 화학제품을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시설입니다. 조금만 유출돼도 치명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독극물을 쌓아둡니다. 당연히 창고의 관리와 감독은 그 어느 시설보다 철저하고 엄격해야 합니다. 어떤 물질이 얼마나 들고 나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확인하며 통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정 반대였습니다.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며칠 지난 어느 기자회견에서 한 중국 기자가 톈진 시 담당자에게 질문했습니다. "도대체 사고가 난 창고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정확히 정리해주시죠."

이에 대한 시 담당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해당 창고는 컨테이너에 아직 싣지 않은 위험 화학 물질을 임시로 보관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일단 보관한 뒤 관련 수속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컨테이너로 옮겨집니다. 따라서 당시 창고에 보관돼 있던 물질의 정확한 종류와 양은 알 수 없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창고에서 다량의 독극물이 빼돌려져도 시 당국은 알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 "무엇을 진화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어쩌다 위험 물질을 보관하는 창고에 불이 났는지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입니다. 다만 창고가 대폭발을 일으킨 원인은 대략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다량의 물이 보관돼있던 시안화나트륨이나 탄산칼슘 등과 반응하며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물질에 물이 뿌려지면 강한 열과 함께 인화성 가스가 발생하고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소방관의 화재 진압 활동이 오히려 대폭발이라는 재앙을 불렀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중국의 소방 담당자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요? "우리가 그곳에 탄화칼슘이 있는 줄 알면서 물을 뿌릴 만큼 어리석었겠느냐"고 소방 당국은 반문했습니다. 부상 소방대원은 "현장에 출동할 때 진화해야 하는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사전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화재의 유형에 따라 진화 방법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은 소방의 상식입니다.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에 물을 뿌려 끄려하면 안 된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압니다. 그런데 중국 소방 당국은 불이 붙은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물을 뿌린 셈입니다.

● "오늘 밤 안에 다 치웁니다." 이보다 낙관적일 수는 없다.

허수산 톈진 시 안전 담당 부시장은 이번 폭발 사고 직후 사라졌었습니다. 그동안 각종 행사에 참석하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던 허 부시장이 언론에서 모습을 감춘 것입니다. 담당 부시장이 각종 언론 브리핑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자 정부 비판에 조심스러운 중국 언론들까지 문제를 삼고 나섰습니다. 담당 부시장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허 부시장은 어제(17일) 드디어 언론 앞에 나섰습니다. 대단히 낙관적인 소식을 들고 말입니다. 특히 사고 뒷수습에 가장 골칫거리로 떠오른 시안화나트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현재 파악하기로 시안화나트륨의 규모는 7백 톤 정도이며 대부분이 0.1㎢ 이내의 핵심지역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오늘(17일) 밤 안으로 전체를 회수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기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청산소다'라고 부르는 시안화나트륨은 그 자체로도 맹독성 물질이지만 물과 반응하면 더 무섭습니다. 시안화수소라는 맹독성 가스를 내뿜기 때문입니다. 이 가스는 섭씨 26.5도에서는 기체에 녹아 피부에 흡수될 수도 있습니다. 허 부시장 말대로라면 이런 모든 걱정은 끝입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방독 작업을 하는 생화학 처리반 요원들 뿐 아니라 현장을 가본 기자는 모두 압니다. 시안화나트륨은 폭발 당시 비산하면서 반경 3km까지 퍼졌습니다. 현장 곳곳에 하얀 시안화나트륨이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톈진시 당국은 사고 현장 반경 3km내에 있는 모든 주민을 대피시킨 상태입니다. 방독 전문가들은 "비가 오면 모든 요원이 철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고위관료의 어이없을 만큼 낙관적인 태도에 오히려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 "공기, 물 모두 괜찮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없다.

톈진 시 환경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환경에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공기나 주변 해역을 측정한 결과 이상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런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국인 대다수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며칠 전 제 휴대전화로 이런 문자 메시지가 전달됐습니다. 주중 미 대사관이 자국 국민들에게 일괄적으로 보냈다는 경고 메시지입니다. "베이징 지역 거주자들까지 절대 비를 맞아서는 안 됩니다. 우산과 우의를 철저하게 갖춰 비가 직접 몸에 닫지 않게 하세요. 또 집으로 돌아오면 우산과 우의를 목욕탕으로 가지고 가서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주십시오."

비도 맞으면 안 된다는 경고에 오싹했습니다. 중국 당국과의 전혀 다른 상황 설명에 답답해졌습니다. 진실이 무엇인가? 해당 문자 메시지는 중국 내 외국인들은 물론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불렀습니다. 공포감이 폭증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문자 메시지는 주중 미 대사관이 발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커지자 미 대사관측이 나서 "자신들과는 무관한 메시지"라며 "해당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중국 당국의 과거 각종 통계 수치를 필요에 따라 조작했던 전력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작금의 설명, 시종일관 유지해 온 투명하지 않은 태도 등이 복합돼 신뢰 상실과 공포 유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이나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등 말은 좋지만 남들이 수백 년 걸린 과정을 단 수십 년으로 압축해 이룬 성장일 뿐입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세월호 사고'에서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우리의 취약하고 허술한 기본과 기초를. 겉만 번지르르 했지 속은 부실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톈진 대폭발 사고'는 중국판 '세월호'입니다. 세계 양강이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지만 아직 다지고 키워야 할 부분이 수없이 남아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번 사고를 '피로 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엄청난 희생을 통해 얻은 귀중한 교훈입니다.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이번 톈진 폭발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고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명명백백하게 꺼내놓고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합니다. 우리도 옆 나라의 불행을 보면서 세월호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고 개선해가고 있는지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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