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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짜 비상등' 달아놓고 '문제 없다'는 에스원

[취재파일] '가짜 비상등' 달아놓고 '문제 없다'는 에스원
국민의 신체와 재산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하는 주체는 국가입니다. 다만 국민의 이런 권리를 국가가 매번 완벽하게 지켜줄 수는 없겠죠. 일종의 사각지대가 있는 셈입니다. 그럴 때 국민은 국가를 대신할 대상을 찾게 되는데요, 바로 사설 경비업체에 그 역할을 맡기는 겁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돈을 줘야 합니다. 그렇기에 돈을 지불한 만큼의 보안 서비스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제보자의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내 1위 경비업체 에스원에 한 달에 9만 원 정도씩 요금을 내고 있는 제보자였습니다. 이 제보자가 받는 보안 서비스는 영업을 마치고 문을 잠근 매장에 누군가 침입하면 에스원이 긴급 출동하는 것이지요. 에스원은 이를 위해 출입문에 경고음이 울리는 센서를 설치하고 이와 동시에 불빛도 점멸되는 유선 ‘비상등’을 설치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이번에 제보자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제보자는 지난 7월 말 상점에 에어컨을 설치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체와 실외기를 연결하려면 출입문 유리를 뚫어야 하는데, 바로 그 언저리에 비상등이 달려 있던 겁니다. 비상등을 함부로 떼면 안 될 것 같아 에스원을 불렀는데 출동한 에스원 관계자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보안시스템의 한 축이라고 생각했던 비상등이 모형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상등을 이른바 공(空)기계로 달아놓은 이유가 비용 절감이라는 말을 듣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귀를 의심했다는 게 제보자의 전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기에 이렇게 비상등을 공(空)기계로 만들어놨을까요. 에스원의 현장 요원들과 인테리어 업자들의 말을 종합해도 이게 워낙 고무줄 가격이라 쉽게 파악이 안 되더군요. 외관상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 벽을 뚫고 마감 작업을 할 경우 전선을 연결하는 비용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많게는 2~3배 차이가 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기업으로선 빠질 수밖에 없는 달콤한 유혹인 셈이지요.

그러나 에스원은 ‘비용 절감을 위해 공(空)기계를 달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공식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취재진을 찾아와 “비상등을 정상적으로 설치해도 비용이 하나도 안 든다”며 현장의 목소리와는 정반대의 해명을 하더군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정상적으로 달아놓지 왜 공(空)기계를 달아놨느냐”고 되물었더니 에스원은 새로운 해명을 내놨습니다.

과거 GPS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출동 요원이 사건 발생 지점을 쉽게 찾기 위해 불빛이 반짝이는 비상등을 설치했지만 지금은 워낙 GPS가 잘 돼 있어 비상등이 필요 없을 정도라는 겁니다. 지금은 비상등이 설치된 지역이 ‘에스원의 보안 지대’라는 홍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상등을 그냥 공(空)기계 달아놓은 거라는 설명도 곁들이면서 말이죠.

‘가짜 비상등’이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에스원의 주장을 국내 60만 가입자가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최고의 보안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과연 에스원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취재한 결과 에스원은 ‘가짜 비상등’을 달면서 고객들에게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짜 비상등’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면 왜 그 사실을 숨겼을까요. 설치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선 경찰들과 보안 전문가들은 비상등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늦은 밤 순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건 혹시 모를 예비 도둑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이죠. 순찰차 경광등의 번쩍거림이 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범죄 실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에스원은 이마저도 부인합니다. 자신들의 보안 시스템 매뉴얼에 따르면 그런 효과는 어디에도 안 나와 있다고 항변합니다. 고객 입장보다는 여전히 자사 입장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가짜 비상등’ 보도 직전에 에스원이 제보자의 상점 비상등에 전선을 연결해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겠지요. 아직도 ‘가짜 비상등’을 ‘진짜’라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고객들에게 에스원은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놔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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